시도

 

 

티비도 없고 유튜브도 프리미엄 회원인터라 광고를 못본지가 꽤 되었습니다. 광고같은거 굳이 볼 필요가 있겠냐 싶지만, 때로는 삶에 강렬하게 인상을 주는 영상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저는 몇가지 광고를 어떤 영화만큼이나 사랑하는데, 그중에서 백미를 말하라면 라코스테의 2017년도 브랜드 캠페인 광고 ’Timeless’입니다. 영상은 (원본 기준) 1분30초에 불과한 시간동안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지나치며,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악어의 존재유무와 상관없이 다양한 시대에따라 포멀하게도 프렌치시크하게도 어우러지는 ‘라코스테스러운 복식’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복식의 색채만큼이나 영상미가 정말 강렬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테마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데는 음악의 힘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Max Richter의 November를 한단어로 요약하자면, Timeless이니까요. 


Max Richter의 November는 10월 마지막 주말의 요란함 조차 아득한 일인냥 침잠하게 만드는 앰비언스와 바이올린의 높은 음역이 길고 천천히 울리면서 흐릿한 향수를 퍼트립니다.
그러나 이윽고 비바람처럼 몰아치는 바이올린의 아르페지오 연주는 불협화음을 건드리며 그 향수 속의 감정을 더욱 치밀어오르게 만들고, 다른 현악기들이 가세하면서 향취에 불과했던 것을 공감각적으로 느껴지게끔 만듭니다. 처음에 울려퍼지던 높은 현의 바이올린과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사라졌음에도, 잔향이 색채를 띄게되면서요.
잠시 음역대를 비워두었던 아르페지오 바이올린이 돌아오며 그 과거의 감정은 더욱 많은 감각을 눈뜨게 만듭니다. 향과 색채는 물론 퍼져 울리는 소리는 감각을 때리고, 달고 쓴 감정들을 맛보게 합니다.
6분여 시간동안 강렬히 쏟아지던 음악은, 어찌보면 너무할 정도로 강렬하고 짧게 끝을 맞이합니다. 인셉션에서 ‘킥’을 맞는 그 즉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죠.

 

(2021년 11월 4일에 쓴 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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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난 날의 색채들을 떠올리고 난 뒤에 다시 마주하는 것은, 저물어 가는 나무들.

 왜 점점 사람이 없어지는 걸까 저 겨울나무가 상실한 것은 없다 당신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갔을 뿐,

 

I'm a high school lover

And you're my favorite flavor

Love is all, all my soul

You're my playground love

저는 고등학생 사랑꾼

그리고 당신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미이죠

사랑은 모든 것이며, 내 모든 영혼이랍니다

당신은 제 놀이터의 사랑이에요

 

Yet my hands are shaking

I feel my body remains

Themes no matter, I'm on fire

On the playground love

아직도 제 손은 떨리고 있어요

제 육신이 머물러 있는 것을 느껴요

테마는 알 바 없어요, 저는 달아올라요

놀이터에서의 사랑으로 하여금

 

You're the piece of gold,

The flushes all my soul

Extra time, on the ground

You're my playground love

당신은 금 조각이에요

제 영혼을 비추는...

그곳에서 연장전을 맞이해요

당신은 제 놀이터의 사랑이에요

 

Anytime, anyway

You're my playground love

언제나, 어찌 되었든

당신은 제 놀이터의 사랑이에요

 

 

 

 

 

 


'봄이 스쳐가고 벌써 여름 오게 생겼네요'
낮에는 따스러워진 덕분에, 요즘은 옥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쭉 지금의 날씨와 기분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나날이었건만, 알고지내는 분으로 '봄이 스쳐가고 벌써 여름 오게 생겼네요'라는 인사를 받고나서는 괜히 벌써부터 여름이 얄미워졌다. 아 곧 여름의 무더움이 찾아오고, 그러면 이 풍류도 즐기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이름에 여름 하 자가 붙은 것과는 무색하게도, 정말이지 내게는 여름이 너무나도 싫다. 더군다나 바다에서의 수영도 못하고 바닷바람의 시원함도 없는 이곳에서의 여름은, 사람을 질식시키는 습함과 무더움 밖에 없어서 말이다.
그런 탓에 어제는 봄과 좀더 시간을 마음으로 비몽사몽한 채 옥상에 올라가 커피를 내려마셨는데, 멍청하게도 유리병을 깨버렸다. 그래서 괜히 여름탓을 하며 바닥청소를 하다가, 초록색 바닥을 보고서는 전진희님의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옥상에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그 한여름의 나무그늘 같은 음반을 어제 오늘 꺼내 들었다.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음반은 건반과 목소리의 차분한 호흡이 주로 이끌어가는데, 욕심을 덜어내고 아껴누른 음과 꾸밈없이 읊듯 부르는 노래는 조용하되 허전하지 않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현악이 일으킨 물결(나의 호수)으로 시작해 피아노의 잔잔한 아르페지오(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로 끝나는 과정에서 정서의 변화는 놓아주질 못하던 감정에서 내려놓음으로 변한다. 극적인 연출은 없음에도 그 과정을 끝까지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미니멀한 편곡과 작은 소리들을 살려낸 믹싱 뿐만 아니라, 시같은 가사가 있어서인 것 같다. 숨을 고르는 소리를 걸러내지 않아 더욱 말소리에 귀기울이며, 노랫말에 귀기울였다.
노랫말은 고요하면서도 마음에 물결을 일으킨다. 곧 돌아올 계절과는 달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떠올리다, 자신을 미워할 수 밖에 없어져서인지.
그런 탓에 매일 떠오르는 달에 나의 한심함을 비춘 채 물여울을 일으키다, 놓아주자고 말함으로 이제 잔잔한 물결이 된다.
다시 호수를 들여다본다. 더이상 함께 비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미련은 덜되, 안녕과 여지를 노래하며.

 

우리의 사랑은 따듯했던 여름이었지.
이렇게 바다의 정서는 없지만 한여름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떠올린 생각들로 채워진 듯한 음반을 듣자, 지나간 여름을 함께 머물러주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여름이 되면 손이 아주 데워진 채 땀도 다한증환자처럼 흐르고는 했는데, 그래서 여름에는 연인과 손잡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함께했던 사람은 내가 손잡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여름에도 손이 차가우니 손을 잡아달라며 내 손을 꼭 쥐어댔다.
손을 잡은 지 얼마안돼서 방향을 바꿔잡거나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핑계로 손을 식히던 터라, 그것은 순 뻥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지만 나는 그 손을 놓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말에 수긍을 하거나 잡았다가도 그 불쾌감을 알고서는 놓아버린 내 손을, 그렇게 용을 쓰며 잡아주는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해의 여름은 내가 서울에서 보낸 그 어느때보다도 무더운 날씨였지만, 나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삼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이 여름의 나무그늘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반을 듣자 그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
당신의 여름에도 어떠한 나무 그늘이 함께 하기를.
해가 점점 길어져가는 것을 보니, 정말 곧있으면 여름이 돌아오려나보다. 이번 여름은 더우려나, 좀 시원하려나. 정확한 것은 그때의 계절처럼 따뜻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여름을 비롯해 다시 돌아올 몇번의 여름에도.


그래도 손이 무더울 때는 편의점에 들러 이프로를 손에 쥐는 걸로, 마음이 열병에 빠질 때는 이 노래를 나무 그늘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사람의 여름에도 어떠한 나무 그늘이 함께 하기만을 그저 바랄 뿐이다.

 

 

2020. 4. 28

Some people get up at the break of day

Gotta go to work before it gets too late

Sitting in a car and driving down the road

It ain't the way it has to be

어떤 이들은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해

너무 늦기 전에 일터로 가야하지

차에 앉아서는 길을 따라 차를 몰아가

그건 마땅치 않은 방식이야

 

But that's what you do to earn your daily wage

That's the kind of world that we're living in today

Isn't where you wanna be

And isn't what you wanna do

허나 네가 일당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

그것이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섭리이지

네가 원하는 곳이 아니고

네가 하고픈 일도 아니지

 

Just give me one more day 

Give me another night

I need a second chance

This time I'll get it right

내게 하루만 더 줄래?

내게 또다른 밤을 줄래?

내겐 두번째 기회가 필요해

이번엔 내가 마땅하게 해줄게

 

I'll say it one last time

I've got to let you know

I've got to change your mind

I'll never let you go

마지막으로 한번만 내가 말할게

네게 알려줘야 하거든

네 마음을 바꿔야 하거든

절대 너를 떠나보내지 않을거야

 

You've got to look at life the way it ought to be

Looking at the stars from underneath the tree

There's a world inside and a world out there

With that TV, you just don't care

너는 인생을 본디 그대로 봐야해

나무 아래에서 별을 바라보며

내면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가 있어

그 TV와 함께, 너는 달리 신경쓰지 않지만

 

They've got violence, wars and killing too

All shrunk down in a two-foot tube

But out there the world is a beautiful place

With mountains, lakes and the human race

And this is where I wanna be

And this is what I wanna do

그들은 폭력과 전쟁, 살인 또한 지니고 있어

모든 것은 2피트 짜리 화면에 줄어들었어

허나 바깥의 세상은 아름다운 장소인걸

산과 호수, 그리고 인류와 함께 말이지

그리고 여기가 내가 원하는 곳이야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하고픈 것이야

 

Just give me one more day 

Give me another night

I need a second chance

This time I'll get it right

내게 하루만 더 줄래?

내게 또다른 밤을 줄래?

내겐 두번째 기회가 필요해

이번엔 내가 마땅케 해줄게

 

I'll say it one last time

I've got to let you know

I've got to change your mind

I'll never let you go

마지막으로 한번만 내가 말할게

네게 알려줘야 하거든

네 마음을 바꿔야 하거든

절대 너를 떠나보내지 않을거야

 

Just give me one more chance

Give me another night

With just one more day

Maybe we'll get it right

내게 한번만 더 기회를 줄래?

내게 또다른 밤을 줄래?

그저 하루만 더 함께한다면

아마 우린 바로잡을 수 있을거야

 

I'll say it one last time

I've got to let you know

If I could change your mind

I'll never let you go

마지막으로 한번만 내가 말할게

네게 알려줘야 하거든

만일 네 마음을 바꿀 수 있거든

절대 너를 떠나보내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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