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봄잠’은 봄에 대한 제 마음이 반영된 곡이에요. 저는 한창 봄이 피어오를 때면 ‘4월은 잔인한 달’(T.S 엘리엇 - 황무지)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가 떠오르고는 하는데, 흐드러진 꽃들과 달리 제 마음은 다시 피어오를 기색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제 감정 때문에 만개한 봄의 시기를 ‘잔인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길가에 피어오른 꽃들에게 미안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대신 봄이 온 줄 모른 척 내내 잠드는 것을 택했답니다.

 

이 곡을 만들게 되었던 것은 작년 4월의 일인데, 그 무렵 저런 감정에 빠져서 끄적거린 뒤에 방치했었다. 원체 곡을 완성한다는 것에는 자신없을 뿐만 아니라, 이 감정을 짚어나가는게 두렵기도 해서. 그런 이유에서 그저 묻어두게 되었다.

 

 

siido - 봄잠, by Various Artists

from the album Postrockgallery Compilation Vol. 1

postrockgallery.bandcamp.com

그런 곡이 결국 두번이나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는데, 첫번째로는 포스트록 갤러리의 컴필레이션의 통해서 였다.

올 봄에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컴필레이션을 개최한 소식을 들었을 때만해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 여겼는데, 생일을 보내는 날에 불현듯 참여를 하고 싶어졌다. 새롭게 곡을 쓸 자신도 기력도 없는 주제에, 무엇보다 자신의 곡을 꺼내는 것을 두려워한 주제에 말이다. 돌이켜 보며 생각하자면, 다시 세상으로 한발짝 다가가는데 이 일이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다만 두려움을 어찌 쉽게 극복하겠나, 

마감 기한이 다가올 동안 곡을 건들어보지도 못한 채 나뭇잎 점 치듯 할까 말까 해댈 뿐이였고, 결국 마지막날에 이 곡을 꺼내게 되었다. 포스트록 컴필레이션이라는 취지에 맞지도, 그렇다고 흥미를 유발할 곡도 아닌 곡을. 무엇보다 한번 손을 댄 것에 불과한 곡을.

 그러나 다른 곡보다 이 곡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놓고 나니, 부끄러우면서도 속이 후련했다. 미완의 모양새이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윽고, 비로소 곡을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달에 완성.

물론 지금 내놓은 것도 '완성'이라기에는, 화끈거린다. 다이나믹을 제대로 주지 못한데다, 이큐잉도 허접한터라..... 들을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구간이 적잖다...만, 그래도 수정하려고 끙끙거렸다면 아마 지금도 내놓지 못하고 있을게 뻔하다. 깔깔

그러니 '이 정도면 됐다'고 다짐한 5월 12일의 나를 칭찬하련다.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