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오래된 편지를 읽습니다 당신에게로 갔다가 우리 속에 놓여진 편지 당신을 만나 즐겁다, 쓰여 있군요 행복해요, 라고도요

가까이 있으면 자랄 수 없다는 듯 간격을 두고 발끝 세운 나무들처럼 큰 바람이 일렁일 때나 사르락 손 내미는 이파리처럼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곁눈질로 골똘했지요 이따금 새들에게 눈 맞추는 건 헛 김나는 일이어서 나는 그만 아득해져 혼자 말갛게 익어가는 산감이 되었더랬지요

그런데 묘목을 심은 첫 자리 뱀처럼 얽혀 있는 우리의 뿌리를 만납니다 나의 밑둥 썩은 감꼭지 핥고 있는 이가 바람이려니 했더니 당신이었군요

벌거숭이 산길에 가위눌리는 일도 끝이지 싶네, 내게로 온, 오늘 문득 층층이 허물 벗은 골짜기 따라 우거지 숲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