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들어가며
본명이 Sam Ray인 Ricky Eat Acid(이하 REA)는 다양한 명의로 활동 중인 음악가이다. 그의 작업명을 보면 REA 외에도 American Pleasure Club, Teen Suicide, Mad Dads 등의 범상치 않은 이름이 수두룩한데(물론 이외의 무난한 이름도 있습니다), 그 이름들이 지닌 교집합에는 유머러스 하면서도 슬픈 농담, 얕은 낙관과 부러진 마음 등의 아령칙한 오르내림이 담겨있다.
그 정서의 배경에는 고향에서의 성장기가 큰 영향을 지니고 있다. 그는 가난하고 무료한 동네에서 자란 탓에, 자신의 성장기는 약물이 가져다 주는 향락과 신에 대한 죄책감을 번갈아 느끼는 것 외에는 권태로운 삶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삶을 그늘 속을 걸어왔다고 여기지 않는다. Teen Suicide 시절의 노래 Neighborhood Drug Dealer에 얽힌 일화를 털어놓으며 나눈 인터뷰는 그가 삶의 이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가 농담처럼 부르는 노래들에 대해 지독한 농담이라 여기거나, 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뱉는 농담이라고 여기죠. 그러나 저는 언제나 그에대해 이것이 내가 만드는 곡 중에서 가장 유쾌한 노래일거라 말해요. 왜냐하면 제 노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꾸밈없이 제 삶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요. 제가 생각할 때 그 사실은 되려 아름답게 여겨져요.
소년시절 우리는 테일러라는 또래의 이웃녀석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약물을 구입하곤 했어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약물을 공급받았는데, 그 또한 약물업자 였지요. 언덕배기에 살던 녀석은 자전거를 타고 주유소 쪽으로 내려와 우리에게 약물을 팔았는데, 덕분에 우리는 약물을 즐길 수 있었지요.
헌데 그 녀석은, 농담이 아니고 자전거로 음주운전을 하다 감옥에 가게 되었어요. 우리는 그 녀석이 사라진 지 1,2주 지나서야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잘 쳐봐야 열여덟 열아홉 얼라들이였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들으러 테일러의 아버지에게 갔는데, 테일러의 아버지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아, 그녀석은 엄마랑 지내고 있단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뒤에는
'아, 그녀석은 엄마랑 하와이에 연휴를 보내러 갔어.’
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테일러가 감옥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는 것을 알았어요. 그럼에도 그녀석의 아버지는 보석금을 내질 않았는데, 테일러의 고객을 가로채서 두배 가까이 돈을 벌려는 속셈 때문이었죠.
우리는 그 사실이 끔찍했지만, 모두 약물쟁이였기 때문에 여전히 그녀석의 아버지에게서 약물을 샀어요. 연관된 이들이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서로에게 거짓된 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상황이었어요. 잘못된 일이지만 필요한 것을 위한 불안정한 기반이었기에 모두가 함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 중 누구도 약을 포기할 녀석은 없었고, 형편없었지요.
모두의 거짓이 쌓여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이 상황은 상호간에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이게 뭔가 우습기도 하지요.”
( 출처 : https://americansongwriter.com/sam-ray-wants-you-to-feel-something/ )

Three Love Songs
Three Love Songs는 자신의 음악을 달리 상업적으로 발매않던 그가 유일하게 레이블을 끼고 발매한 음반이다. 그는 키우던 고양이의 죽음(Big man’s last trip)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제대로된 음반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음반에는 경이와 두려움, 사랑과 죽음, 향락과 혼란의 감정이 로파이, 앰비언트, 칠, 다운템포 등의 장르로 빚어져 있다. 갖은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지만, 문장으로 이루어진 제목 아래 찰나의 감각과 감상이 선연히 투영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뚜렷한 서사를 띄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귀로 읽을 때마다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벗어나, 한때의 순간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새벽마다 울리던 집 뒤 절간의 타종소리나 공단지역에서 나는 쇠냄새에 대한 감각이나, 친구의 말없이 흘리던 눈물이나 애꿎게 향하던 분노에 대한 기억 등, 무료하거나 마음아려 외면했던 소년시절의 편린조차 언덕에서 바라본 해질녘의 풍경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게 된다.

What is Three Love Songs?
개인적으로, '세개의 사랑 노래'라는 제목은 아마 기억을 둘러싼 행위들을 의미하나 싶다.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회상, 짚어보며 써나가는 기록, 그리고 창작으로써 재구성. 각 행위들은 삶의 공통된 시절을 짚어보는 것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향취로 우리 삶에 음률을 채운다. 나는 샘이 지난 날에 끔찍한 일이라 여긴 일을 그래도 우스운 구석이 있었다고 떠올리며 음악으로 써나간 것도, 그렇게 하나의 시절을 세가지 방식으로 머금어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스무살 이후로 십대와는 또다른 굴곡을 오르내렸던 내가 이따금씩 되돌아본 삶에서 운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또한, 그의 음악이 함께한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음계로 채워진듯한 기억일지라도 한음한음을 짚어보며 아늑함을 느끼며 입에 머금게되는 따듯한 운율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의 음반을 들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도 ‘Three Love Songs’를 들으며 지난 시절 속에서 숨어있던 삶의 음표를 짚고, 사랑이라는 제목의 악보를 채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