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Bon Iver의 Woods는 네개의 구절로만 이루어진 가사를 반복하며 화음을 쌓습니다. 그가 고요한 숲에서 외침을 쌓는 이유는, 시간을 늦추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숲이라는 곳은 결국 그에게 안식처가 아닌 도피처에 불과하기에, 지금 자신이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 외치는 듯합니다. 그 소리에 회답받기까지에는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 여기는 한편, 삶의 끝 이전에는 결국 회답받기를 바라기에 시간을 늦추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요.
이에 대해 James Blake(이하 젬스블)는 첫 정규음반에 수록된 노래 ‘Measurements’로 응답합니다. 두 곡 모두 변조된 음성이 화음을 이루고 숲을 빌려 자신의 내면을 말하는데, 방법론의 유사점만큼이나 상징에 띤 관념도 어우러집니다.
젬스블이 숲을 언급한 것은 단순히 본 이베어의 상징에 회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라는 명제를 꺼냈던 조지 버클리의 질문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기도 합니다. 젬스블은 소리를 지각할 수 없는 사람을 두고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확인하라 함으로써, 가닿을 수 없는 한계를 말합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가 있어도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더욱 외롭고 시리며, 그렇기에 내면을 구름 속에 숨기려 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이를 보는 것은, 결국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게 만들 것이라 말하며요.

숲에서의 고독을 택한 두사람의 만남은 이듬해 발매된 젬스블의 2011년의 EP에 수록된, 기다림의 끝에도 회답받지 못하는 고독을 다룬 노래 ‘Fall Creek Boys Choir’에서 함께 상징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고독 속에서만 숨결을 내쉴 것 같던 두사람은 2016년 제임스 블레이크의 ‘A Colour of Anything’에 수록된 ‘I Need a Forest Fire’를 함께 부르며 변화된 의지를 드러내었습니다.
젬스블은 자연(본성, Nature)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잊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숲은 고독을 상징하며 나무가 내면을 뜻하기에, 고독이 오래동안 자신들을 지켜주었지만 어느새 자신들을 나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을 깨닫고서 말을 꺼냅니다.
오래동안 우울의 대명사로 불리었던 그들은, 그에 대해 돈이 네 이름을 사버렸으며 네 존재는 너무 지나치다고 말합니다. 어느새 자신을 지배하려는 고독과 대중의 호응이 부풀어 오름을 경계하며, 그 기대에 반하는 것으로 ‘비난’해도 될지를 묻습니다.
한편, 백향목과 불을 언급하는 것은 기독교적 상징을 빌려온 것입니다. 백향목은 권세와 힘, 아름다움 혹은 교만을 상징하며, 불은 신과 영광, 심판 혹은 정화를 뜻합니다. 이 노래에서는 정화를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런 점에서 자신들에게 명성을 쌓게했던 고독을 불태움으로써 정화되길 바랍니다.
제임스 블레이크가 인용했던 구절의 주인인 조지 버클리는 ‘자신 외의 존재에 대해서는 실재를 증명 할 수 없다’는 유아론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나무를 불태운다는 것은 단순히 고독을 떨쳐낸다는 것 뿐이 아니라, 가닿을 수 없는 한계에 대한 회의를 떨쳐 버리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래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고독을 끝내고 새로운 풍경으로 나아가길 선언합니다. 새가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고, 태어나려 하듯이요.

 

tmi: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노래에는 기독교적 상징이 들어갔기에, 노래의 많은 구절을 되짚어 볼만 하기도 합니다. 그럴경우 ‘당신에게 어떤 비난으로 보답해도 될까?’라는 구절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신이 기도하는 이에게 응답하는 것의 반대로, 본인이 신에게 비난으로 응답하겠다는 것이니요. 또한 제가 ‘You know that money bought your name’는 구절 또한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긴 것을 언급하게 되는 격이니, 패드립을 치면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보면되겠네요. 농담입니다.

*조지 버클리가 직접적으로 저 질문을 꺼낸 적은 없는데, 아마도 ‘인간 지식의 원리론’의 4~7장과 42~43장의 문장이 몇차례 인용을 거치며 와전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는 ‘한 것으로 알려진’이라 일일히 쓰려니 문장이 길어지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조지 버클리가 했다고 써놓음. 참고로 반문거리가 있는 저 문장에 대해 버클리는 ‘내가 지각하지 않는 때에도 대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존재하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종교가 우세하던 시절에 반박불가능한 멘트를 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