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내가 명랑할 수 있는 것은 머리끝까지 절망이 뿌려졌기 때문이야 황소의 붉은 털빛 땅에 홀로 서서 단 하나의 연장도 없이 우연히 주운 지팡이로 땅을 판다 땅을 파면 과자가 나오겠는가 싶지만 물을 찾을 수는 있었다 파낸 만큼 매운 흙을 마셔야 했다 바람이 밉지도 않았다 여전히 별을 보면 가슴이 뛰지만 흙이 입에 들어오면 욕부터 나온다 내가 명랑할 수 있는 것은 욕을 할 줄 알기 때문이야 놀랍게도 이 마른 땅 곳곳에 말뚝처럼 모두들 혼자서 땅을 판다 누군가 물을 찾으면 목을 축일 수 있지만 혼자서 땅을 판다 충분히 괴로웠기 때문에 괴로운 이야기가 싫었다 붉은 먼지를 너무 많이 마시면 귀를 씻고 싶게 만드는 말들이 웅웅거렸다 달리던 순간의 감미로운 사탕을 입안에 넣고 굴렸다 분화구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땅을 파다 쓰러지면 구덩이는 그대로 나의 무덤 비는 남쪽으로 많이 와 비는 남쪽으로 많이 와 슬픔이 퍼져도 절망이 감싸도 얼굴에 쓰는 것이 무의미해지자 딱딱한 못이 얼굴에 박혔다 팔을 베고 누워 차가운 밤하늘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파낸 붉은 흙이 펄펄 날린다 자고 일어나면 얇고 빨간 흙이불을 덮고 있겠지 지금은 고래의 귀와 플랑크톤의 붉은 시체만 다가가 가만가만 지구의 심장 소리를 듣는 심해를 생각해 아직은 죽지 마 아직은 죽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