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Endless Summer'

 Bruce Brown 감독이 1960년에 촬영한 영화 Endless Summer는 충분한 돈과 시간만 있다면 지구의 공전에 따라 끝없는 여름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행에 옮긴 서핑 다큐멘터리로, 두 서퍼가 끝없는 여름을 따라 미국에서 시작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거친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노이즈/글리치 음악가 Fennesz가 2001년에 만든 동명의 음반은 그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햇살처럼 지글거리는 노이즈와 잠잠해진 바다처럼 퍼져나가다가도 이내 거칠게 숨을 쉬는 기타의 텍스쳐, 그리고 여름 바다의 짠내처럼 아릿한 향을 뿜어내는 신스의 소리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향수는, 서퍼들이 거친 파도와 뒹굴고 난 뒤 어느새 벌겋게 채워져가는 바닷가를 바라보는 그 풍경 속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Before I Leave

 그런데 이 음반에는 유일하게 이질적인 곡이 있습니다. 음반이 2/3지점을 지났을 때 나오는 ‘Before I Leave’으로, 마치 슬라이드 필름 환등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띈 글리치 음악입니다.

페네스가 어떤 의도에서 이질적인 곡을 만들었을지를 생각하면서, 저는 다큐멘터리 속의 사람들이 뜨거운 파도를 쫓아 지구를 한바퀴 돌고서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여름을 실제로 경험했을 때의 희열은 어떠했을까요? 비록 지구의 공전현상이 놀라울 것 없는 때였고 비행기로 이동을 하긴 했다만, 일년 내내 여름을 쫓아 떠도는 것은 여전히 벅차고도 경이로운 일일테지요. 그 런 시도를 실행해내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은 거친 파도로 밀려왔을 겁니다

 그러나 푸른 파도를 바라보는 여정의 마지막 밤 속에서, 다시 영원하지 않은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 속에 밀려온 파도는 잠재워졌을 것일테지요. 그런 이유에서 ‘Before I Leave’를 들으면 제게 순간들이 쉼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들리고,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슬픔의 정서가 있어 이 음반이 더욱 아름답고 완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속에 담기지 않은 이면의 감정과 서사를 빚어내어, 영원이라는 관념을 달리 생각케 만들기에요. 

 

Endless

 음반은 ‘Endless’로 끝맺습니다. 그들은 단 한번 머금어본뒤 ‘Endless Summer’를 떠났지만, 그 기억은 주홍빛 노을아래 뜨거운 파도가 되어 그들의 삶에서 끝없는 여름이 되었을 겁니다.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박소란, 푸른밤)

 

 

영화 Endless Summer. 여담이다만 이 영화는 ‘surf-and-travel’이라는 서핑문화를 만들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핑 영화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으며, 재작년에는 'A Life of Endless Summer’라는 제목의 헌정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