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벽지 속에서 꽃이 지고 있다 여름인데 자꾸만 고개를 떨어트린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런가 하여 허공에 꽃잎을 만들어주었다 나비도 몇 마리 풀어주었다 그런 밤에도 꽃들의 訃音은 계속되었다 옥수숫대는 여전히 푸르고 그 사이로 반짝이며 기차는 잘도 달리는데 나는 그렇게 시들어가는 꽃과 살았다 반쯤만 살아서 눈도 반만 뜨고 반쯤만 죽어서 밥도 반만 먹고 햇볕이 환할수록 그늘도 깊어서 나는 혼자서 꽃잎만 피워댔다 앵두가 다 익었을 텐데 앵두의 마음이 자꾸만 번져갈 텐데 없는 당신이 오길 기다려보는데 당신이 없어서 나는 그늘이 될 수 없고 오늘이 있어서 꼭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도 부음으로 견디는 날도 있는 법 아욱은 저리 푸르고 부음이 활짝 펴서 아름다운 날도 있다 그러면 부음은 따뜻해질까 그렇게 비로소 썩을 수 있을까

나는 같이 맨발이 되고 싶은 것
맨발이 되어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으면
어디든 따뜻한 절벽
여기엔 없는 이름
어제는 없던
구름의 맨살을 만질 수 있지
비로소 나
세상에서의 부재가 되는 일
세상에 없는 나를 만나는 일
이 불편하고 쓸쓸한 증명들로부터
더는 엽서를 받지 않을 거야
이 세상을 모두 배웅해버릴 테니
이건 분명해
견딜 수 없는 세계는 견디지 않아도 된다
창문에 매달린 포스트잇의 흔들림처럼
덧붙이다가 끝난 생에 대하여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그래서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