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몇 번의 개종 후에 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발목 속에 짐을 풀었어. 창문 너머로 몇 개의 골목들이 생겨났지만 그건 질문도 대답도 아니었어 지리멸렬이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이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죽어가겠지 보고 싶어 아무도 그립지 않았으므로 여름이잖아 당신에게 주지 못한 머리핀 두 개를 반짝이게 하던 세계는 이제 없지만 누가 지나든 넘어진 채 좀 있어도 되는 슬픔에 대해 천천히 이름을 지어보는 일 녹슬고 멍들어서 이제 좀 자유로워지는 일 내겐 없는 기억들이 되돌아와 내 뺨을 후려칠 때 왜 그래요 라고 말하지 않는 일 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려 애쓰는 일 그렇게 반짝이는 일 그렇잖아 여름은 울고 나면 친절해지지 수건이 그랬고 책상이 그랬고 폐허조차 그런 걸 그렇게 좀 죽어도 괜찮다면 어떤 눈물이 반쯤 올라오다 멈추어 선 채 몇 개의 계절을 살더라도 그것은 아주 먼 고장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같은 것 질문과 대답이 그렇게 여러 해를 떠돌고서야 여름을 기다리곤 했지 그래도 여름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잊으면 되고 눈동자도 없이 손가락도 없이 기린이 되는 노래 바람이 불어서 나는 자꾸만 당신에게 계몽되고 있어 바다 너머로 기린을 보러 가고 싶어 더는 자라지 않는 투명해진 발목이라도 괜찮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