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귤이 먹고 싶어요, 말하면 그는

투명한 귤 한알을 손바닥에 올려두고

손집게로 껍질을 벗기는 마임을 합니다

한알을 모두 벗기고 나면 반쪽을 뚝 떼어

자, 귤이란다, 능청스레 손을 내밀죠

 

어쩌겠어요? 속으로는 실망하고 말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등분된 귤을 받아 드는 시늉을 합니다

없는 귤을 먹으며 아, 맛있다, 말할 줄도 아는

나는 그렇게 순진한 바보는 아닙니다

굶주린 모두를 고작 한덩이 빵만으로 흡족하게 하였다는

허풍선은 믿지 않아요

 

그런데 틀림없이 내가 혼자서만 골똘하던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는 나의 물음에

보이지 않는 깨달음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진짜 귤의 유일함

 

한알의 귤에서 열개의 귤 조각을

메마른 입술처럼 얇은 표피를 벗기고 다시

수많은 알갱이를 발견하는 건

귤을 쥔 자의 마음이라고요

 

그러니까 그것은

칼을 들이밀지 않아도 부드럽게 쪼개지는 것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다섯으로

혹은 손가락이 부족할 만큼으로도 나뉘는 것

 

한알의 귤에서 몇 사람의 몫을

발견할 수 있느냐는 오롯이

귤을 쥔 자의 마음이라고요

 

하루 몽상을 다 마치고 그림자를 끌며 가는 귀갓길에는

배고픈 저녁이 이미 절반쯤 삼켜버린 해를

손에 꼭 쥐는 시늉을 합니다

시간은 아직 내게

반쪽이나 건네주는구나, 홀로 중얼거리면서요

주황색을 너무 많이 만진 사람처럼

손가락 끝이 누렇게 물들겠죠

 

천만에, 나는 만져지지 않는 귤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내가 혼자이고

보이지 않는 이 외로움을 다정하게

건네받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해와 까치와 그림자, 심지어는 여기에 없는

그에게라도 말을 걸며

오늘의 잔양을 나눠 갖는 이가 나만이 아니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