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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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말쯤,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J)에게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나약해진 모습을 보았다. 몇해 간 점점 작아져가고 있긴 했다만, 혼자 꾹꾹누르질 못한 이야기를 결국 꺼내었을 때는 속상해서 울화가 터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답지 않은 오지랖을 부렸는데, 다음날 아침에 본 (J)의 메시지에서는 또다시 아픔을 감당할 것이라고 쓰여있었다. 어찌되었든 결실을 맺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밤새 울먹이다 내렸을 결론에 내가 달리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자랑 이랑'을 띄워 보내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전하고픈 말은 있어서.
 그런데 이 시를 띄우고 나니 J가 떠올랐다. 내가 (J)에게 띄워주었듯이, J 또한 내게 이 시를 띄워주었다보니 말이다. 올해 초 이후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알 수 없게된 그 친구로부터 '나의 자랑 이랑'을 받은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몇 해 동안의 잠수를 끝낸 다음 J를 찾아갔는데, 연락처도 없어서 무식하게 아파트 입구에서 마냥 기다렸다. 제발 이사만은 가지 않았기를 비나이다 하면서. 다행히도 그 오밀조밀한 동네에 별이 쏟아진 것마냥 곳곳에 불이 켜지고, 평상에 더불어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이 주무시러 들어가셨을 무렵에 J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아마 부산이 아니라 강원도였다면 나는 아마도 샤이닝의 마지막 장면처럼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몇해만에 불쑥 찾아온 주제에 나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대신, 친구의 오른쪽 네번째 손에 끼워진 반지에 갖게된 반가운 호기심을 포함해 이런저런 근황을 미주알 고주알 캐물어 대었다. 그런 무례함 앞에서도 J는 되물어보는 것 없이 마음껏 반겨주고 대답해주었다. 우리는 마감시간이 되어서야 카페를 나왔고, 가파지른 언덕을 한참 말없이 오르던 중 J는 내게 김승일 시인님의 '나의 자랑 이랑'이라는 시를 아냐고 물어보았다. '희지의 세계'와 '구관조 씻기기'는 읽어봤지만 '에듀케이션'은 읽어보질 않은터라 그 시는 초면이었는데, 질문을 들은 당시에는 '하필'이었지만 지금은 그 빈틈이 있어 다행이었다.

 모른다는 내 말에 J는 '잠시만' 이라 말한 뒤, 휴대폰을 뒤적이고서는 시를 불러주었다.
 그때는 내 친구가 여전히 시를 채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기뻤을 뿐이었다.

 다시 생각하니, J 또한 나약해진 친구를 마주하고서 달리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시를 띄워다주는 것이어서, 그래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시를 불러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말하지 않았음에도 내 초라한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던 J는, 아마 어떤 말로 나를 위로하면 좋을지 머릿속 서재를 아주 뒤적거렸을 것이다. 자존심만 센 바람에, 남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약점을 내비친 것으로 여기며 부끄러워하는 친구를 위해서. 그렇다보니 그 숨차는 언덕길에서도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고, 내 가냘픈 뒷모습을 보고서야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라는 구절이 나오는 시를 떠올린게 아니었을까 싶다.
 여러모로 J는 내게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김승일님과 이랑님이 분류한 인간의 여섯 종류에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외에 또 어떤 사람이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친구를 그 속에 넣어놓을테니. 물론 '나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포함해서.

 언젠가 어느 때에 재회한다면, 그때는 내가 J에게 '나의 자랑 이랑'을 불러줄 것이다. 너를 위해 불러줄 수 있는 노래가 없으니, 그 시라도 너처럼 마음 다해 불러줘야지.

20211013

 

 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를 나는 네게 부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