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그저 흰건반을 편히 오르내리듯이



Screwed Up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어떤 일이 엉망이 된 적이 있을 것이다. 생업이나 세워놓은 계획이 무너져내리거나, 누군가와의 관계로인해 마음의 병이나버려 멈춰서게 되는 등. 뭐 그런 것 말고도 닐스 프람처럼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손가락을 다쳐 두려움에 빠지는 일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로인해 한낮의 시간을 비몽하게 보내다, 밤이 찾아왔을 때는 자책과 외로움에 휩싸여 잠들지 못한 때가 있을 것이다. 이불보다도 두터운 좌절감이 자신을 누르는 탓에, 그래도 내일은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자는 용기대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버렸다는 허탈함에 눈물 흘리면서.

Screw
만약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닐스 프람의 Screw를 들어보았으면 싶다.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일곱개의 음이 순환하는 이 음반은, 그가 회복의 밤을 보내며 만든 음악이기 때문이다.

2012년, 닐스 프람은 스튜디오에 있는 침대에서 잠꼬대를 하다 굴러 넘어진 탓에 왼손 엄지 손가락을 다치게 되고, 예정된 스케쥴과 음악작업을 취소하게 되었다. 근본은 건반연주자인 그에게 손가락이 다쳤다는 사실은, 부상의 심각한 정도를 떠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작은 골절에도 뼈마디의 감각은 이전과는 달라지기 마련이고, 섬세하고도 강렬한 연주를 하는 그에게는 말그대로 뼈아픈 악재를 맞이한 것이다.
그의 고통은 라이너 노트에도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부상을 입은 며칠 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연민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그는 밝힌다.
이런 감정에 빠진채 원치않은 휴식에 내던져진 그는 결국, 의사로부터 당분간 피아노는 손도 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온전한 아홉 손가락으로 매일 밤 자신의 손을 피아노에 맞춰 조율해나갔다.
그렇게 회복과 재조율의 시간 속에서 이틀에 한번씩 녹음을 진행하며 Screw 음반을 완성했다고 하며, 이를 통해 부상으로 인한 악감정을 덜어내고 자신이 던져진 환경에 적응해 무언가를 성취한 것에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그저 흰건반을 맘편히 오르내리듯
본 음반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닐스 프람 특유의 고양되는 진행없이 물결처럼 흐르는 서정성이다. 개인적으로 닐스 프람은 조용한 연주를 할 때에도 ‘흘러감’보다는 동적인 면모를 띄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Screw에서는 섬세한 소리 속에 고요함이 울려퍼지고 있다. 부러짐의 고통도 완쾌의 기쁨도 없는, 그러나 아홉손가락으로 피아노에 자신을 맞추어가며 회복하는 밤의 풍경을 아홉곡에 비추고 있다.

뭐, 이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만, 아무런 생각없이 평온한 마음을 얻고자 할 때 그저 '조용한 피아노연주' 검색하며 듣듯 들었으면 한다. 어릴적 '도,레,미,파,솔,라,시'가 C Major 스케일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고도 흰건반을 즐겁게 오르내리며 그 구성음을 즐길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음반 또한 이면의 이야기나 기술과는 상관없이 그저 맘편히 평온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넘어짐으로 인해 마음 한켠이 부러진 듯한 기분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당신과 나 사이의 도레미파솔라시가 순환하는 이 음악을 들으며, 저마다의 'You'와 자신을 맞춰나가며 회복의 밤을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