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핀란드 사진가 마리아 렉스는 핀란드 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으로 현재는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영화를 전공한 마리아 렉스는 신비롭고 화려한 색감과 빛이 담긴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Some Kind of Heavenly Fire〉는 작가의 고향인 핀란드 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960년대 UFO 목격담에서 출발한 작업을 담은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2021 British Journal of Photography가 주최한 Open Walls Arles에서 시리즈 사진 카테고리를 수상하였고, 이 책은 2020 핀란드 올해의 사진집 최종 리스트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어느 날 작가는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보다, 이 작은 마을이 과거 UFO가 목격되는 장소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기장에는 이상한 빛이 하늘에서 숲을 비추고 밤중엔 사람들을 쫓아온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현재 과거의 소동은 잊힌 채, 이 곳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스쳐 지나는 장소일 뿐이었고, 작가 역시 일기장을 읽기 전까진 이 같은 마을의 비밀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일기장에 담긴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치매가 진행 중이던 할아버지는 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일기장에 적혀 있던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작가에게 들려주었고, UFO와 관련해 보관해둔 사진과 신문 기사를 공유해주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우리는 늘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와서 우리를 이 절망에서 이끌어내주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신, 백만장자, 혹은 외계인일지라도 말이다"

“어느 날 밤, 언덕 위로 올라가 잠시 차를 세웠다. 어둠 속으로 헤드라이트를 몇 번 켜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자 그것이 나타났다”

“나는 이 빛들을 우리를 살펴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신호로, 우리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란 신호로 받아들였다”

“어느 날 밤 눈으로 보기에 마치 숲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다. 추운 11월 밤이었고 땅에는 눈이 쌓여 있었기에, 불일 리 없었다. 그날 밤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천상에서 내린 불 같았다”

이러한 구절들은 UFO를 직접 보았다는 서술이라기보다 자연적 현상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읽어내려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마을의 밤풍경과 이 풍경이 당시 사람들에게 지녔을 의미를 <Some Kind of Heavenly Fire>에 담았습니다.

“UFO 목격담이 들리던 시기는 북부 핀란드가 극심한 곤궁을 겪던 시기와 일치한다. 사람들은 일을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갔고 아름답지만 거친 시골풍경에는 버려진 빈 집들이 산재해 있었다. UFO 목격담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생활방식과 생계에 불어닥친 가차없는 변화 등이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 미스테리한 빛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이를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로 여겼다” - 마리아 렉스

번역 출처 : 이라선(클릭 시 링크 이동)


나는 가끔씩 불빛으로부터 어떤 영적인 울림을, 그러니까 단순한 감정의 고취 이상의 떨림을 느낄 때가 있다. 어둠 속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스파클러의 불빛으로부터, 마음이 저무는 때에 피운 담배의 불빛 등으로부터. 불빛이라는 것은 그 크기와 밝기를 떠나서 따듯하고도 울컥하게되는 존재이기에 그런 떨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먼 옛날의 사람들은 사고영역 내에서 파악 불가능한 현상이 발생하면, 그러니까 그 당시의 경험과 인식에서 알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그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해 외부의 존재를 끌어오고는 했다. 한마디로, 인류는 자연현상으로부터 신을 빚어내어 왔다. 그에 대해서는 기우제가 좋은 예로, 대륙을 막론하고 가뭄이 내리는 것을 신과 관련된 일이라 여기며 의식을 치루어 왔다.
이렇게 자연현상에서 신을 찾던 시절에 번개의 신은 대부분의 신화에서 서열이 높았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제일 가는 신이고, 북유럽신화의 토르는 오딘 다음으로 활약한 신이다. 이는 벼락에 대한 공포가 컸던 한편, 농경사회의 사람들에게는 비가 내리는 것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비소식과 함께 찾아오는 번개에 감사하며, 비가 내리는 데에는 번개의 신의 역할이라고 여겨왔다.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종교에서 번개의 신은 비나 풍요의 신을 겸하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기독교에서도 번개는 신의 음성이나 눈빛을 대변하는 것으로 상징을 지니고 있다.(욥기 37장)
이렇게 인류는 자연신을 믿는 시대를 지나 인격신을 섬기는 때에도 자연현상을 신과 관련된 일이라 여겼지만, 과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일의 대부분이 자연현상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성경이나 신화에 기록된 이야기도 과학의 영역아래에서 추론하고 해석되는 시대이며, 그렇기에 전세계적 재앙인 코로나 사태에도 신이 침범할 틈이 없다. 당장 자신의 집 앞마당에 번개가 한시간 동안 내려친다고 해도, 신을 생각하는 생각대신 인터넷을 켜서 그 기이한 기상현상의 원인을 확인하는게 대부분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공포나 고난 앞에서 미지의 존재를 떠올린다. 불을 내려줄 존재를. 이 시대에서 과학의 범주를 넘어 떠올릴 존재가 있다면, 어떤 존재가 가장 합리적일까? 내가 그런 존재의 실낱을 당겨본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도 먼 우주 너머의 존재가 가장 그럴 법하다고 생각한다. 우주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가 한가득이니까.


마리아 렉스의 ‘Some Kind Of Heavenly Fire’는 그런 미지의 존재와 믿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진집으로, 작가는 오래전 고향에서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알게된 뒤, 마을의 사람들로부터 전해받은 이야기와 기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진집을 덮고나서 나는 생각했다. 불빛이 얼마나 초현실적이었는가를 떠나서, 작가의 할아버지는 그저 믿었던 것일지 모른다고. 스산한 바람만이 부는 현실에서 절망감만 쌓여가는 때에 마주한 불빛이, 그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먼 우주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라 그는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보았을 불빛이, 정말로 어떤 불가사의하고도 성스러운 불길이었으리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싶다. 작가의 고향 어른들이 목격한 불빛 또한 여타 어느 미스테리처럼 어떻게든 원인을 추론가능한 기상현상의 일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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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조셉 고든 래빗의 초기 출연작인 ‘미스테리어스 스킨’을 떠올렸다.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한 소년은 어린시절 어느 밤에 기억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소년은 그 일을 UFO에 납치되어 겪은 일이라 여기는데, 자라고서도 그 미스터리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베일을 걷어내었을 때, 현실은 어린 소년으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던 참혹한 일을 겪은 것이었다.
극을 보면 소년의 무의식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저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해 의지할 곳 없는 소년이었기에, 이해할수도 감당할수도 없는 영역에 대해 불가사의한 존재를 빌어 현실의 고통을 잊혀낸 것이다.


나는 소파에 기댄 채 고향의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사진집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미스테리어스 스킨의 마지막 장면에 흘러 나오던 ’Samskeyti’를 반복재생한 채, 한참동안 눈을 감았다. 외계인과 불빛을, 외로운 영혼들을 거두어준 불가사의한 존재와 위안의 눈빛을 떠올리면서.

원본 사진 출처 : 마리아 렉스의 트위터 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