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청춘은 고아지. 새벽이슬을 맞고 허공에 얼굴을 묻을 때 바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지.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청춘은 다 고아지. 도착하지 않은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 나는 발 없는 새.

 

이제니, 발 없는 새 중에서

 


저는 자라온 환경 탓인지, 국내 음반이 그리 친숙치 않아 찾아 듣질 않는데다 대부분의 곡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런 제가 유하님의 음반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제 친구와 동명인 음악가라는 점, 그리고 음반의 커버 때문이었습니다. 김밥레코즈에서 음반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 사이에 방지펜스를 의자삼아 멈춰있는 사람에 눈길이 갔거든요. 저는 그런 우연 덕분에 제 이십대를 되돌아 볼 때 마음에 귀기울인 음악가 중 한명을 만날 수 있었어요.

우선 유하님의 음반에서 느낀 음악적 감상을 말하자면, (포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탓도 있지만) 포크보다는 미니멀한 얼터너티브라고 칭하고 싶네요. 여담이다만 저는 James Blake를 광적으로 좋아하는데, 그의 음악이 지닌 미덕을 꼽자면 단순 반복이 아닌 심상을 더욱 진하게 더하는 노랫말, 간결한 허밍, 그리고 (요즘에는 그리 말하기 어렵지만)미니멀함과 함께 공간감이 뛰어난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유하님의 음반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유하님 또한 그런 부분에서 큰 매력을 지닌 음악가이기에요.

 

앞서 제임스 블레이크 만큼이나 허밍의 사용이 매력적이라고 말을 드렸는데, 멜로디를 이끄는 것 뿐만 아니라, 화음을 더해주는 요소로써도 악기 만큼이나 섬세하고 곡의 구성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건반과 일렉 기타, 드럼과 더블 베이스의 간결한 구성일 뿐만 아니라, 곡의 절반 정도가 두가지 악기 만을 사용하는데, 부유하는 때에도 노래에 질감이 담겨 결코 허전하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을 포크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탓도 있지만, 얼터너티브 혹은 어쿠스틱으로 편곡된 듯한 미니멀한 전자음악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뭐, 평소에 전자음악이나 신서사이저가 주 구성을 이루는 음악을 즐겨듣는 탓에 그렇게 듣는 것이겠지만, 반복되는 뼈대와 적은 악기 편성에도 불구하고, 멜로디 라인이 두드러지는 피아노 연주와 공간을 채우는 현악기, 주로 스쳐지나가는 터치를 하다가도 어느 곡에서는 발산하는 드러밍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음반이 지닌 앰비언스는 음향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느끼기에, 무례함을 무릅쓰고 포크보다는 전자음악의 어쿠스틱 편성같다며 부정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좀더 올바르게 음반의 매력을 전하고 싶은데, 얕은 식견 탓에 잘 모르는 장르를 내려 까는듯한 소리를 하며 사견을 이어가는데 점 죄송합니다. 다만, 미니멀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은 입장에서, 정말 본받고 싶은 음악이기에 자신의 취향 가까이로 엮으면서 말하게 되네요.

 

부족한 분석력으로 음악적인 감상을 이어나가는 것은 이쯤으로 하고, 보다 더 말하고 싶던 감상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유하님의 젊은이를 듣고서, 저는 정말 어딘가를 마구잡이로 서성이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표제작인 젊은이로 음반을 마치고나서는, 이제니 님의 발 없는 새를 꺼내어 읽었답니다. 비슷한 나잇대를 대상으로 하여금 '새'로 비추어 보았기 때문인 한편, 젊은이라는 호칭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청춘에 속해 있음에도, 차마 자신을 청춘의 주인공이라 여기지 못하는 이가 대신 스스로를 칭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럼 여겨져서요. 그 호칭을 마땅히 소화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명징하게 짚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로나마 지어 부르며 헤메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청춘이라 칭하라고하면 그것은 고아에 빗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내리깔 용기도 없다면, 스스로를 청춘이라는 말 대신 그저 젊은이라며 물릴 수 밖에 없을테고요. 사담이다만, 저는 이 음반에 개인적인 감정을 꽤 투영하며 보내었습니다. 인부 1도 마치 저를 대상으로 그려낸 노래인 것만 같고, 음반을 닫는 곡 또한 들을 때면 이십대의 대부분을 계약에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며 짐싸던 제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에요.

 

여기에, 음반에 실린 몇가지 곡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음반은 Sausalito로 시작합니다. 이곡은 지도를 펼치지 않고서도 Sausalito라는 지역이 지닌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한편, 그 여유로움에 녹아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듯한 인상을 전해줍니다. 누군가의 차에서 울리는 부저음은 지나쳤음에도 마음 한켠에 왜인지 모르게 걸린 채, 해안가의 잔물소리와 함께 말대신 털어놓는 읊조림에 어우러집니다.

 

그렇게 발을 떼게 된 음반은, 풍경의 일부로 매몰 될 법한 인부(인부 1)를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꿈을 마음 한켠에 접어둔채 매일의 피로에 오르내리는 삶을 그려 봅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인한 관심이 아닌 그저 자신의 한켠을 투영한 듯한 읊어냄이지만, 어느덧 지금의 일을 행하는 걸 최선의 삶이라 여기며 애정에 대한 마음을 소일거리로 여긴 채 피로에 잠기는 게 대부분의 우리이기에, 아이러니하지만 노랫말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이렇게 음반은 걸으며 바라보고, 떠올린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잠시 멈춰서서 부른 듯한 곡도 몇가지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Hallelujah와 글자의 도망을 언급하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믿음이 두렵기 때문에 신앙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그렇지만 때로는 신을 마음 속에서 부르는 때가 있기 마련이지요. 뭐 주기도문을 외거나 염불을 외는 대신, 어릴 적에는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h를 불러왔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하님의 Hallelujah를 대신 불러요. 제프 버클리의 노래보다 더 그런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무슨 말을 써야할지,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면서도 허우적거린 적 있겠지요?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왜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젊은이의 걸음질이었다면, 이 곡은 그런 시도들에 대한 무력감을 말하는 것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