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2009.4.9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유명 아티스트의 음악을 연주해 웹에 올려놓은 커버 영상이다. 거기에는 일종의 천국이 있다. 나는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해왔기 때문에 이토록 열심히 연습해서 당신들 앞에 선보입니다.내가 음악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는 나의 재능과 노력도 물론 있겠지만 이 훌륭한 아티스트에게 빚진 부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 지금 이 노래를 합니다. 라는 애정과 경의의 표현. 그 존경의 에너지. 세상에 이만큼 긍정적인 것이 있을까. '아마추어' 희망은 그 단어 속에 있다. 그 단어가 포괄하는 모든 것이 희망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 희망을 믿을 것이다

2009. 6. 9
작가선언. 떨리고 무서웠다. 미란다 원칙을 숙지하고 나간 게 무색해지게 경찰은 우리한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조용히 끝내고, 술을 마시러 갔다. 사람들의 얼굴은 다양하고도 복잡했다. 근 일주일간 밤새 총대 메고 일한 사람 들은 피로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손톱만큼의 뿌듯함 을, 더 많은 사람들은 그전보다 커진 괴로움을 안고 아무도 때리지 않고 방 패를 들이밀지도 않는 술집으로 갔다. 거기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때는 이런 거 하면 1차 갈 생각도 감히 못했는데 너희는 2차까지 가다니 진짜 신기하다, 고 했다. 예전 같으면 되게 싫었을 텐데 그냥 들었다. 듣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예술가들도 있었다. 나처럼 그냥 작가가 직업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예술에 대한 냉소가 습관이 된 내 마음으로도 예술가라고 부르고 존중해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그들이 조용히 서로를 마주보며 낮은 목소리로 '시인과 촌장'의 노래들을 함께 부르는데 잠시 질투가 느껴졌다. 난 순결한 문학이 어쩌고 문학의 사명이 어쩌고 하는 말은 하나도 믿지 않지만 그 순간만은 그들의 얼굴이 몹시 예뻐서 정신이 아찔했다. 그 순간의 풍경만큼은, 같은 문장을 읽는 사람들의 목소리라 쩌렁쩌렁 강당을 울리던 순간과 똑같이, 소름이 돋을 만한 것이었다.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 몸에 무언가가 배서, 몸이 그걸 기억해서, 입에서 저절로 같은 소리가 나오다니. 그런 경험의 공유가 있다니 얼마나 부러운가.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와 마주보며 서태지나 너바나나 블러나 패닉의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었을 뿐이다. 너는 이렇구나, 나는 이런데,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끔찍한 일들에 문을 닫아건 채 골방에서 혼자 썩어 죽어가는 날들이 지겨워 미치기 직전일 뿐이었다. 근데 자리에 있던 76년생 글쟁이가 뽕짝 분위기로 끌고 가버렸다. 야이 같은 76년생인데 왜 뽕짝이냐. 제발 좀 멋있게 놀자고 다음에 보면 말해봐야겠다.
다만 그렇게, 전에는 모르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2009. 7. 24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었다. 솔직함. 투명함. 남김없이 드러내기. 아무리 무의미하고 추하고 가볍고 사람을 찔러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천박해 보인다 해도 나는 인간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내뱉는 모든 말, 모든 행동의 까끌까끌한 부스러기가 진실에 가장 가까운 요소라고 여겼다. 그래서 난 착한 어른보다는 언제나 발랄하고 반항적인 미친년, 미친놈이 좋았고 인간들의 바보스럽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말들과 냉소에 깊이 매료되곤 했다.
이제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선함에 이르기 위한, 가공과 양념을 거친 그 부질없는 노력들은, 부서져가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부정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긍정태를 만들어보려고 두 번 생각하고 세 번 혼자 앓는 사람들의 노력이 값져 보인다.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두 번 세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나의 부족함에 대해. 세계의 겹쳐진 빛깔에 대해.

2016 여름 통권 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