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따지고 보면 나도 누군가와 마주보며 서태지나 너바나나 블러나 패닉의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었을 뿐이다. 너는 이렇구나, 나는 이런데,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끔찍한 일들에 문을 닫아건 채 골방에서 혼자 썩어 죽어가는 날들이 지겨워 미치기 직전일 뿐이었다. 근데 자리에 있던 76년생 글쟁이가 뽕짝 분위기로 끌고 가버렸다. 야이 같은 76년생인데 왜 뽕짝이냐. 제발 좀 멋있게 놀자고 다음에 보면 말해봐야겠다.
다만 그렇게, 전에는 모르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윤이형, 천 번을 반성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지: 2009~2010 중에서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려 공연을 보고, 뒷풀이라고 할 법한 시간을 보내었다. 발단은 신분증을 두고 간 채 공연을 보러간 탓이었는데, 앞서 스태프 석에 앉아 있던 지인을 피해 고개를 숙였음에도, 달리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던 까닭에 결국 그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인사를 나누고, 빌붙은 다음에는 연락처를 다시 전하게 되었는데, 30분 쯤 지나자 여유가 생긴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시 담배 피울 겸 밖으로 나오면서 그의 다른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다시 들어갈 때는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 빚을 갚을 겸 사게 된 술은 다시 또 얻어먹는 술이 되었고, 요즘에 레이브 문화를 회상하는 글을 옮기며 시간을 보낸 탓인지, 더욱 지난 시절을 떠올리었던 터라 예전에는 하지 않던 법썩까지 떨어대었다. 그 탓인지 메인 타임이 끝나고 숙소로 가려던 계획은, 모든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반은 정신을 놓은 채로, 또다른 사람들이 합세하는 걸 즐기며 시간을 보내었다.

  모든 이벤트가 끝난 다음에는 그 중의 다른 사람의 제안에 따라 그 사람의 집에서 마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화장실에서 속을 비우기 전까지는 마냥 들뜬 기분이었다. 토를 하고 난 다음에는 괜히 부끄러운 기분과 함께 차분함이 찾아온 터라,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늘어진 몇 사람을 정돈하는 정돈하고 잠에 들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드러 눕는 대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 걸 택한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담배를 태우다, 괜히 오늘의 일을 강 따라 복숭아 밭에 도착한 사람처럼, 이상하고도 즐거워 하는 걸 시작으로 또다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시금 술을 곁들인 탓인 탓인지, 피어오르는 취기 따라서 다들 지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모르는 이름도 섞이긴 했지만, 명월관이나 케이크숍이나 앤써나, 지산이나 글로벌개더링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찮게도, 나이는 물어보질 않았지만, 비슷한 연배의 비슷한 이야깃거리들이 나왔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아마 이 자리에서 말고도 언젠가 한번은 또 같은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보다는 그래서 일까, 감길 듯한 피로감이 찾아왔을 때는 이 취기를 빌린 반가움이 다시 눈을 뜨게 될 무렵에는 퇴색될 것을 생각하니 괜히 더욱 쓸쓸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잠시 바람 쐬러 간다는 핑계로 나온 뒤로는 숙소를 향해 갔다. 아마 문 여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고 내게 어딜 가냐고 물어본 사람 조차도, 아침이 되었을 무렵에는 나라는 사람이 어젯밤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숙소까지 걸어오는 길은 한시간이나 걸렸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였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우연찮게 사람들과 어우러진 시간이 참 많았다. 재작년 연말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곧 주점 내의 사람들과 어깨 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의 이뤄지지 않을 약속에 동조를 한 채 상징을 나누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을 다시 방문한 사람이 있을까, 라기에는 우리 세명부터 그러질 않았지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그렇게 우연한 만남에서 지켜지지 않은 약속으로 끝마친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스무살 초반에는 그런 하룻밤의 약속에 괜히 의무감을 느끼기도 했다가 이내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헛헛해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다시 그런 우연과 약속이 입 밖으로 나와 귀에 닿을 때면 애를 쓰게 되었지만 말이다.

  한때는 그런 것에 괜히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가, 점점 바라는 마음과 이후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충돌한 것이라 이해하려 하고, 또 어느 무렵부터는 그냥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하는 주문에 불과하다 여기게 된 듯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런 일들에 대해 헛헛해하며,어찌되었든 비겁한 내가 재회를 피하길 택하게 되었다. 사실은 괜히 내가 두려워 외면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할 때, 가끔씩 어쩌면 이어졌을지도 모를 유대를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