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제 머릿속에서는 이 음반이 영혼의 기록물로 들리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리련지 잘 모르겠네요.
Joy Orbison, 음반을 공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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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단편집이든 시인의 시집이든,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해도 그 속에는 여러 이야기를 꿰는 하나의 맥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성령 수필집이라도 말이다. 기쁨을 이야기해놓고선 바로 다음장에서 슬픔을 말할지라도, 삶을 진중히 이야기하다가도 어제 망친 요리에 대한 푸념을 이야기를 할지라도, 그 무렵에 쥐고있던 어떤 관념이란 가려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쏘시개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음악이라해서 다를 바 없다.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아니라면, ‘Untitled’로만 채워진 음반이거나 ’기계적인’ 음악을 할지라도 어떤 주제가 내밀히 담겨있기 마련이니.

그런데 노랫말이 없는 음악의 경우 내포된 이야기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특히나 전자음악의 경우에는, 친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춤추기 좋을 뿐이거나…. 정신 산만할 뿐. 나의 경우 음악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에는 앨범커버나 음악가의 소개문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음악이 좋아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소개하려는 Joy Orbison의 ‘still slipping vol.1’이 전자에 해당하는 음반이다. 음악의 곳곳에 대화가 삽입되어 있다만, 현지인이 아니다보니 그 목소리의 내용은 알 수 없어 소개문을 살펴볼 수 밖에.

본격적인 소개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만 두고서 짤막하게 얘길 하자면, 이 음반은 새벽에 드라이브를 할 때 듣거나 적당한 템포로 러닝을 할 때, 혹은 술을 마시며 적당히 흥을 느끼고 싶을 때 듣기 좋은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하우스와 개러지, UK드릴 등의 장르가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희석되어 있으며, 믹스테이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흐름이 이어지는터라 무언가에 몰입할 때 종종 꺼내듣게 되어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을 때도 들으며 보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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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반을 소개하자면, 이 음반은 음악가 개인의 삶과 밀접한 음반이다. 그는 음반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글에서 가족의 기록물에 대한 일화를 언급하는데, 가족과 소속감에 대한 생각과 함께 그 관념이 자신의 음악과 어떤 관계를 띄고 있는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일화가 계기가 되어, 그는 이 음반을 가족과의 협업으로 여긴다. 그는 가족과의 대화를 음악에 녹여들게하고, 음반과 함께 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발매하며 가족을 음반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인다.

사실 이러한 요소는 음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2019년의 EP(Slipping)에서도 쓰이고 있다만, 그가 새삼스레 2년이 지나서 가족에 대한 애정을 밝히며 동어반복을 한것은 아니다. 이전작에서는 소리의 공간을 채운 것에 불과했던 음성들을 좀더 전면에 배치하고 곡 간에 보다 유기적인 연결을 취함으로써, 몇몇 곡에 몰두하게 되는 것보다는 가족의 기록물 전체를 선형적인 흐름 속에서 귀기울이게 만든다.
그가 믹스셋이라는 구성을 취한 것은 가족과의 하우스 파티를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처음으로 전자음악을 접하게 해준 사촌 Leighann 뿐만 아니라, 소싯적부터 R&B와 래게, 소울 음반을 모으셨다는 아버지, 그리고 젊은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정글 장르를 디제잉하고 있는 삼촌 Ray Keith 곁에서 자란 그는 어릴적부터 가족과의 파티에서 디제잉을 했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음반을 가족과 함께 즐기는 믹셋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십여년 만에 기어코 낸 첫 정규 음반이 믹스테이프인 점은 꽤나 얄밉지만,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알고나서부터 나는 음반의 표지만 바라봐도 가족이 떠오른다. 엄마와 브누야 셋이서 차를 타고서 음악을 듣는 순간이 말이다.

차를 타면 주로 선곡을 맡는 것은 나인데, 풍경과 달리는 시간, 그리고 정체유무에 따라서 어머니와 누나의 반응이 달라지는터라 신중하고도 치밀하게 음악을 배치한 다음 두 사람의 반응을 기대하고는 한다. 물론 아다리가 안맞으면 누나와 어머니께 플레이할 기회를 뺏기는 만큼, 즐거운 긴장감을 느끼면서. 그 순간 만큼은 내가 하우스 파티의 디제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다.

 

2022. 11. 6 작성, 2023년의 어버이날을 준비하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