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내가 너의 새를 사서 대신 날려주고 싶다 너는 남고 그 옆에 나도 남고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같이 있단 생각이 먼저 들겠지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은혜 갚은 까치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면 너는 널 부르는가 해서 나는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볼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나는 너와 내가 너와 나의 인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운명으로 묶여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저절로 켜지는 네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 싶다 나는 네 개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나는 네가 믿는 종교를 이해하고 싶다 나는 네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싶다 나는 네 팔을 끌어당겨 자동차에게서 너를 구하고 싶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으면 곧장 너에게 전화하고 싶다 정말로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너와 함께 멀리서 남영역에 불이 꺼지는 것을 쳐다보고 싶다 너에게 첫끼를 차려주고 싶다 네가 가는 병원에 따라가고 싶다 이 앞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같이 들어갈까 저기 봐 노인이 고교생을 두들겨 패고 있어 우린 같이 밀린 빨래를 했지 밀린 빨래를 오랜만에 하는 빨래라고 말해 보았지 진짜 무섭더라 노인이 고교생 패던 거 정말 무섭더라 도로 위에 끝없이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거 저길 봐 너랑 똑 닮은 애가 지나간다 미래의 네 자식인가 봐 그러면 너는 애가 못 본 새 많이 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몰라 병원에서 네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너무 슬퍼서 네가 왜 그런 얘기를 들었는지 무슨 병인지 물어보고 싶다 추측하고 싶다 걱정해야 한다 밥을 먹자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지 첫 끼를 이미 먹어 배고프지 않은 너와 소화가 되게 너의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 종로육가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 니가 내게 먼저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꼬박꼬박 집에 돌아가니 벙어리 노인이 나를 맞아주었어 벙어리 노인을 바꿔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사실 내가 벙어리 노인이야 네가 그러면 아니야 내가 벙어리 노인이야 빨래가 어디갔지 네가 그러면 내가 미리 다 개켜놓았어 나는 너의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 싶다 종로육가에는 짜장면 집도 있다 앞으로는 걸어다니지 말자 나는 비정하게 말하고 싶다 네가 나의 마음을 알 수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지쳐서 주저앉아도 나는 주저앉고 싶지 않다 나는 담배를 끊고 싶다 나는 너의 눈을 쳐다보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믿고 싶지 않다 나는 신앙을 가지고 싶지 않다 네가 너의 사람과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상상을 할 때 그곳에 내가 있다면 나는 무엇도 빛이라고 부르지 말고 사람이라고 믿지 않으며 멀찍이에 있겠다 나는 아무것도 부르고 싶지 않다 나는 너희 두 사람의 멀찍이에 있고 싶다 나는 너희의 뒤에서 최신가요를 부르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을 너희들을 그리고 우리들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 않다 손을 잡지 않으면 어깨도 잡지 않고 그러면 끌어안을 일이 없다 나는 너의 뺨을 만지지 않고 뺨에 흐르는 것이 있어도 무시하고 싶다 나는 흰 김이 나오는 추운 거리에서 숨을 쉬고 싶지 않다 나는 아름다움을 모른다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 나는 느낌을 간직하지 않는다 가스레인지를 고쳐주고 싶다 나는 너희에게 돈을 주고싶다 택시를 타라고 거리를 벗어나라고 나는 너희의 사랑을 폭로하고 싶다 나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종로가 육가까지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정말로 잘 되어가고 있다 나는 누구의 눈도 바라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눈에 담긴 것은 진실과는 상관없다고 이제 걷지 말라고 서울에는 아침에만 가고 싶다 나는 다정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고 싶다 나는 너희가 정확히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을 재서 보여주고 싶다 나는 책상이 없는 교실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중학생 같은 것은 보고싶지 않다 나는 리코더와 너를 남겨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싶다 나는 너에게서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종로육가에 있다 이 쪽으로 와라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