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하지만 나는 종로육가에 있다 이 쪽으로 와라 괜찮으니까


 모름지기 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종로에서 만나면 기형도 아니면 황인찬 시인을 꺼내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만에 만나는 J와의 만남을 종로에서 가지질 않았다면, 아마 나는 종로가 6가까지 있다는 사실을 영영 모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종묘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눈치 보듯 근황이야기를 꺼내다 풍경이나 늦은 점심거리를 말하다가, J는 불쑥 종로사가를 가장 좋아한다며 너는 몇가를 가장 좋아하냐고 내게 물어보았다. 그 질문에 나는 종로육가를 꺼내며, 그 이유를 덧붙였다. 존재하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J는 그런 내 대답에 갸우뚱 하더니, 네이버 지도를 켜며 그 말이 잘못된 것을 알려주었다. 이런, 정말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넘게 종종 종각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산책을 했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그 사실 때문에 김승일 시인님의 종로육가에 대해 느끼는 애정의 많은 부분이 달아나버렸기 때문이다.
 
 종로육가, 황인찬 시인의 종로 연작에 대한 김승일 시인의 그 대답을 처음 읽었을 때는 정말로 눈물이 흘렀다. 황인찬 시인의 연작을 이어간 그 시에는 황인찬 시인이 그려낸 외딴 장면들에 자신이 함께 있더라면 했을 모습들을 써내려가는 것과 함께,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내며, '하지만 나는 종로육가에 있다 이 쪽으로 와라 괜찮으니까'라는 말로 마침으로써 기다림을 전하는 것에 친구와 마음의 거리를 함께 걸으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친구를 위해 '종로육가'라는 가상의 거리를 만들어내어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 쓴 것이라고 착각했으며, 그 점이 이 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종로육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J에게 들었을 때는 정말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냅다 지도부터 보여주니까 어찌 부정할까.
 다만 내가 여태 종로6가라는 표지판을 어떻게 그냥 지나쳤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함께 표지판을 찾는 모험을 떠나자고 제안을 했다. 날씨는 산들했고, 몇 년의 부재에도 우리는 걷는 걸 더 좋아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없었기에 문제될 것 없었다.
 
 걸어보니, 종로 5가와 동대문 사이에 있는 종로6가를 여태 발견하지 못할 만하더라. 체인점 같은 곳은 물론이고, 지명을 알리는 표지도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종로5가' 혹은 '동대문'이라고 밖에 쓰여있질 않았기 때문이다. J도 그 사실을 인정해준 한편, 우리는 두번째 목표를 세우고서 '사이의 동네'를 탐방하기로 했다. 우리는 '종로6가'라고 쓰여있는 표지를 찾아나섰다.
 
 

 
 한시간 정도 돌아다녔을까. 우체국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반칙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결국 다른 '종로6가'를 찾지 못해 저 사진이나마 간신히 찍었다.
 그리고, '종로6가'를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생각을 했다. 이 거리가 친구를 위해 만들어낸 거리가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종로5가와 동대문 사이에 위치한 이유로 이전의 내가 모른채 걸어지냈고 지금처럼 찾으려 애를 써도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 거리라면, 황인찬 시인이 더하지 않은 채 마친 거리를 이어다 시로 부른 것은 그 나름대로 감동인 것이 아니냐고. 꽃을 구해다 주지 않아도, 쓸쓸히 지나던 길가의 오른편에 들꽃이 피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존재를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친구 또한 아름답기 마련이니까. 끝내 발 내딛지 않은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며 함께 마침표를 찍길 바라는 친구 또한 아름답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J는 뻘짓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어주면서, 내가 착각한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로육가'를 아름답게 읊도록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묶여있던 몇가지 이야기 보따리를 J에게 꺼내었다.

 종로는 육가까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