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봄이 스쳐가고 벌써 여름 오게 생겼네요'
낮에는 따스러워진 덕분에, 요즘은 옥상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쭉 지금의 날씨와 기분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나날이었건만, 알고지내는 분으로 '봄이 스쳐가고 벌써 여름 오게 생겼네요'라는 인사를 받고나서는 괜히 벌써부터 여름이 얄미워졌다. 아 곧 여름의 무더움이 찾아오고, 그러면 이 풍류도 즐기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이름에 여름 하 자가 붙은 것과는 무색하게도, 정말이지 내게는 여름이 너무나도 싫다. 더군다나 바다에서의 수영도 못하고 바닷바람의 시원함도 없는 이곳에서의 여름은, 사람을 질식시키는 습함과 무더움 밖에 없어서 말이다.
그런 탓에 어제는 봄과 좀더 시간을 마음으로 비몽사몽한 채 옥상에 올라가 커피를 내려마셨는데, 멍청하게도 유리병을 깨버렸다. 그래서 괜히 여름탓을 하며 바닥청소를 하다가, 초록색 바닥을 보고서는 전진희님의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옥상에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그 한여름의 나무그늘 같은 음반을 어제 오늘 꺼내 들었다.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음반은 건반과 목소리의 차분한 호흡이 주로 이끌어가는데, 욕심을 덜어내고 아껴누른 음과 꾸밈없이 읊듯 부르는 노래는 조용하되 허전하지 않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현악이 일으킨 물결(나의 호수)으로 시작해 피아노의 잔잔한 아르페지오(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로 끝나는 과정에서 정서의 변화는 놓아주질 못하던 감정에서 내려놓음으로 변한다. 극적인 연출은 없음에도 그 과정을 끝까지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미니멀한 편곡과 작은 소리들을 살려낸 믹싱 뿐만 아니라, 시같은 가사가 있어서인 것 같다. 숨을 고르는 소리를 걸러내지 않아 더욱 말소리에 귀기울이며, 노랫말에 귀기울였다.
노랫말은 고요하면서도 마음에 물결을 일으킨다. 곧 돌아올 계절과는 달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떠올리다, 자신을 미워할 수 밖에 없어져서인지.
그런 탓에 매일 떠오르는 달에 나의 한심함을 비춘 채 물여울을 일으키다, 놓아주자고 말함으로 이제 잔잔한 물결이 된다.
다시 호수를 들여다본다. 더이상 함께 비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미련은 덜되, 안녕과 여지를 노래하며.

 

우리의 사랑은 따듯했던 여름이었지.
이렇게 바다의 정서는 없지만 한여름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떠올린 생각들로 채워진 듯한 음반을 듣자, 지나간 여름을 함께 머물러주었던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여름이 되면 손이 아주 데워진 채 땀도 다한증환자처럼 흐르고는 했는데, 그래서 여름에는 연인과 손잡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함께했던 사람은 내가 손잡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여름에도 손이 차가우니 손을 잡아달라며 내 손을 꼭 쥐어댔다.
손을 잡은 지 얼마안돼서 방향을 바꿔잡거나 음료가 마시고 싶다는 핑계로 손을 식히던 터라, 그것은 순 뻥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지만 나는 그 손을 놓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내 말에 수긍을 하거나 잡았다가도 그 불쾌감을 알고서는 놓아버린 내 손을, 그렇게 용을 쓰며 잡아주는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해의 여름은 내가 서울에서 보낸 그 어느때보다도 무더운 날씨였지만, 나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삼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이 여름의 나무그늘을 떠올리게 해주는 음반을 듣자 그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
당신의 여름에도 어떠한 나무 그늘이 함께 하기를.
해가 점점 길어져가는 것을 보니, 정말 곧있으면 여름이 돌아오려나보다. 이번 여름은 더우려나, 좀 시원하려나. 정확한 것은 그때의 계절처럼 따뜻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여름을 비롯해 다시 돌아올 몇번의 여름에도.


그래도 손이 무더울 때는 편의점에 들러 이프로를 손에 쥐는 걸로, 마음이 열병에 빠질 때는 이 노래를 나무 그늘 삼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사람의 여름에도 어떠한 나무 그늘이 함께 하기만을 그저 바랄 뿐이다.

 

 

2020.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