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Bliss to be alive는 Sheryl Garratt이 자신의 친구인 Gavin Hills의 글을 엮어낸 책입니다. Gavin Hills는 Casual이라 불리우는 영국의 80년 대 문화를 다룬 글을 쓴 것을 시작으로, 각종 잡지에 거리의 문화와 사회적 이야기를 주로 쓴 칼럼리스트였습니다.

 

  제가 그를 알게된 것은 2018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Real Lies가 Tom Demac과 합작한 싱글인 White Flowers의 노랫말에, 그의 이름이 언급 된 것을 통해서 알게되었답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감정을 풀어내는 그 노래에서, 그들은 'Gavin Hills 같은 이들은 여럿 있지만, Gavin Hills는 더이상 없지'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름이 지닌 영향력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그들의 떠나간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싶었지요. 그래서 Gavin Hills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고, 저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Bliss to be alive'라는 구절이 단순히 노랫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친 이를 떠올리며 읊어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제가 Gavin Hills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던 것은 적었습니다. 영어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한 터라, 그를 추억하는 동료가 쓴 기사를 훑어보는 정도에 그쳤지요. 또한 그 당시에는 이 책이 재발간 되기 전이었던 터라, 그의 글을 읽을 기회도 없었답니다. 사실 엄두도 나질 않았고요. 그래서 앞서 첫문단에 쓴 짤막한 소개문처럼, 그가 끼친 영향 정도만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지요.

 

 

  이렇게 일회성 관심에 그칠 뻔 했던 그를,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것에는 또다시 Real Lies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작년에 그들의 새로운 앨범 'Lad Ash'가 발매되었을 때, 그들은 'Bliss to be alive'를 새긴 여러 굿즈를 발매했습니다. 새 앨범에는 그 구절이 담긴 노래가 실려있지 않음에도 굿즈에 그 문장을 새긴다는 것은, 첫 음반으로부터 8년이 지나서 발매하는 음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 책에 대한 흥미가 좀더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사고,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개인적인 감정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어가 서툰 사람이 원서를 구입하는 일은, 아무리 팬심이라고 하여도 쉽게 엄두가 나질 않으니까요.

  지난해 초 부터 다시금 제 마음을 덮은 우울증이 심해지자, 저는 많은 것에 마음을 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해가 거듭되었을 때는, 잠시나마 희망을 머금어 보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는 한편 떠나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커져가더군요. 아무래도 저는 더이상 어린은 물론 젊은 이라는 형용사를 제 이름에 붙일 수가 없는 나이가 되어서, 시간이라는 물살을 이겨내지 못한 채 잠겨버린 것들이 많아서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White Flowers를 들으며 마음을 기대는 일이, '살아있다는 축복'을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더군요. 물론, 그렇지만 점점 심해져가는 제 우울은, 폭탄이 집으로 도착한 뒤에도 쉽게 불 붙질 못했습니다. 더이상 일기 조차도 쓸 여력이 없어지던 때였기에, 번역을 하는 일도 손에 잡히질 않더라고요.

  그런 제가 불을 붙이게 된 것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이었습니다. 어느새 나이가 들고 나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간다는 것에는 내 어느 시절을 함께한 음악가의 죽음도 포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의 죽음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마음에 큰 고통을 느끼게 만들더군요. 그는 고령인데다 오래동안 앓고있던 병이있었고, 근래에 생의 마지막 작업물을 짐작하는 작품을 냈기 때문에 SOPHIE의 죽음처럼, Gavin Hills의 죽음처럼 낯설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삶이란 것에 대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이렇게 '살아있다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 Gavin Hills의 글을 읽어가면서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그의 작업물이 아닌 책의 앞부분에 쓰인 그의 친구들의 소개문을 번역하고 있지만, 그 글을 읽고 모국어로 옮기면서, 저는 Gavin Hills의 글에 대해,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해 더더욱 많은 관심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전에 영화나 음악을 통해 어렴풋히 알고 있던 시절을 좀더 알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그 시절을 살아가며 문화를 새기고 삶의 의미를 새겨나간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면서요. 또한 저는 젊은 시절 짧게 나마 알고지낸 사람들과 '씬'을 일으키려 노력한 적이 있기 때문에, 괜히 그에게 더욱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분께서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오실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당신의 관심사가 그가 다룬 이야기의 일부인 덕분에 들어왔을 것이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비록 허접한 번역을 아주 느린 속도로 해나갈 것이지만, 제 번역글을 통해 그의 이야기와 삶을 함께 읽어나가주시길 바랍니다.

  한편, 하루에 두 세 페이지 씩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초반에 쓰인 Sheryl Garratt의 소개문은 우선 Gavin의 글을 좀더 번역한 이후에 쓰려고 합니다. 글의 분량이 조금 긴 한편, 글의 내용이 앞서 번역한 '결코 밀레니엄을 볼 수 없었던 소년' 과 비슷한 내용이어서 이런 선택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책에 쓰인 이야기는 1997년인 만큼 2000년에 쓰인 글과는 좀더 다른 감정이 실려 있을 것이니, 추후에 반드시 번역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께서는,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 정도 방문을 하여 함께 읽어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80,90년 대 영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어떤 시선을 읽어나는 시간을, 그리고 '삶이라는 축복'을 떠올려 보고 짚어보는 여정을 함께 보낼 수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