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내가 명랑할 수 있는 것은 머리끝까지 절망이 뿌려졌기 때문이야 황소의 붉은 털빛 땅에 홀로 서서 단 하나의 연장도 없이 우연히 주운 지팡이로 땅을 판다 땅을 파면 과자가 나오겠는가 싶지만 물을 찾을 수는 있었다 파낸 만큼 매운 흙을 마셔야 했다 바람이 밉지도 않았다 여전히 별을 보면 가슴이 뛰지만 흙이 입에 들어오면 욕부터 나온다 내가 명랑할 수 있는 것은 욕을 할 줄 알기 때문이야 놀랍게도 이 마른 땅 곳곳에 말뚝처럼 모두들 혼자서 땅을 판다 누군가 물을 찾으면 목을 축일 수 있지만 혼자서 땅을 판다 충분히 괴로웠기 때문에 괴로운 이야기가 싫었다 붉은 먼지를 너무 많이 마시면 귀를 씻고 싶게 만드는 말들이 웅웅거렸다 달리던 순간의 감미로운 사탕을 입안에 넣고 굴렸다 분화구엔 무엇이 살고 있을까 땅을 파다 쓰러지면 구덩이는 그대로 나의 무덤 비는 남쪽으로 많이 와 비는 남쪽으로 많이 와 슬픔이 퍼져도 절망이 감싸도 얼굴에 쓰는 것이 무의미해지자 딱딱한 못이 얼굴에 박혔다 팔을 베고 누워 차가운 밤하늘을 바라보면 누군가가 파낸 붉은 흙이 펄펄 날린다 자고 일어나면 얇고 빨간 흙이불을 덮고 있겠지 지금은 고래의 귀와 플랑크톤의 붉은 시체만 다가가 가만가만 지구의 심장 소리를 듣는 심해를 생각해 아직은 죽지 마 아직은 죽지 마

나는 버림받을 여자가 아니에요
창문마다 네모랗게 저당 잡힌 밤은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극적이에요
담배 좀 이리 줘요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요?
여기는 바다가 너무 가까워요
이 바다가 정원이라면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부자로군요
이 정도면 나, 쓸만하지 않나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스워
다 이해하는 것처럼 고개 끄덕이지 말아요
밤 밖으로 수평선이 넘치고
아 이런, 술잔도 넘쳤나요
지금 걱정하고 있군요 취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위험할지 몰라요
*오래될수록 좋은 건 술 밖에 없어요
갈곳도 없고 돈도 없다고
내가 유혹하는 것처럼 보여요?
당신 마음은 어떤가요
죽고 싶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살았던 게 아니에요
부서지기 위해 바다 끝으로 밀려온 파도처럼
이곳까지 떠나온 게 아니던가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여긴 정말 파도말고는 아무도 없군요
그런데 왜 자꾸 아까부터
그 큰 눈을 그리 꿈벅대는 거예요
파도처럼 이리 와 봐요
나는 섬이에요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에 나오는 대사

한밤중의 기적에 대하여, 혹은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
소녀가 소년한테 묻는다.
"너 나를 얼마나 좋아해?"
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한밤중의 기적 소리만큼"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뭔가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 시나 세 시, 그쯤일 거야. 하지만 몇 시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어쨋든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한번 상상을 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도 전혀 안 들려.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장소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설령 내가 이대로 사라진대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건 마치 두꺼운 철상자에 갇힌 채,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야. 기압 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그대로 쩍 하고 두 조각으로 갈라져버릴 것 같은 - 그런 느낌이야. 이해할 수 있어?"
소녀는 끄덕인다. 아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년은 말을 계속한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가장 괴로운 일 중 하나일 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죽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상자 안의 공기가 희박해져서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이건 비유가 아니야. 사실이라고. 이것이 한밤중에 홀로 잠이 깬다는 것의 의미라고. 이것도 알 수 있겠어?"
소녀는 잠자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소년은 잠시 사이를 둔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 아주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로가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만큼 멀리서 들려오거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기적 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면 내 심장의 통증은 멈추고 시곗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 위로 천천히 떠올라. 모두가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 정도로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라고. 나는 그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해."
거기서 소년의 짧은 이야기는 끝난다.
이번에는 소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I close my eyes trying to imagine
You're talking to me
Whispering in my ears
Let's pretend you're here Invisible
눈을 감고서는 모습을 그려봐요,
그대 내게 말을 거는 모습을
내 귀에 머무른 속삭임
당신이 여기 투명인간으로 있다고 치기로 해요

Not sure to remember
All the details of your face
Can't touch your body
But I feel your mind and soul
기억할 수 없지요
당신의 낯이 지닌 모든 부분을요
당신의 몸을 메만질 수 없지요
허나 나는 당신의 마음과 영혼을 느낄 수 있답니다

Love across the sea
Love across the sea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Let's pretend you're here invisible
Like the song of the wind in the trees
And you know that's how my heart is
당신이 여기 투명인간으로 있다고 치기로 해요
나무에 걸려있는 바람의 노래처럼요
그리고 아실테지요 제 마음이 어떠한지를

Love across the sea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A friend
A lover
I want love to mean freedom and eternity
친구여
연인이여
나는 자유와 영원을 띄는 사랑을 원해요

Love across the sea
Love across the sea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Just catch the wave don't be afraid
Just catch the wave no don't be afraid
You just have to catch the wave
그저 파도를 잡아요 두려워 하지마요
그저 파도를 잡아요 아뇨, 두려워 하지마요
당신은 그저 파도를 잡으면 되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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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cross the sea
Love across the sea
Love across the sea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랑

 

Kestrels breed
Looking farther than I can see
Without tact to read
She'd take a shine to me
Beacon don't fly too high
Beacon don't fly too high
황조롱이는 자라나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먼 곳을 바라보며
임기응변을 익힐 필요도 없지
그녀는 내게 호감을 내비쳐
봉화를 너무 높게 날리지 말아
봉화를 너무 높게 날리지 마

For all your time
Playful crime in rain
Worth it being cold
Roofing for the lanes
A lesson lost again
A lesson lost again
당신의 모든 때에 얽힌
빗 속에서 벌인 장난스러운 죄악들
냉담해질 가치가 있어
길목에 자리한 지붕은
또다시 교훈을 잃고 말았어
또다시 분별을 잃고 말았어

Cute but I'll take the bus
With fees and favours gone
Cracks in savers pass
And a white that sometimes shone
Wanton borrowed gun
Wanton borrowed gun
귀엽지만 나는 버스를 타겠어
사례도 호의도 떠나보낸 채
정기권은 균열이 생기고
이따금씩 빛나던 하얀빛
왠지 모르게 빌려버린 권총
왠지 모르게 빌려버린 권총

Kestrels breed
Looking farther than I can see
Without tact to read
She'd take a shine to me
Beacon don't fly too high
Beacon don't fly too high
황조롱이는 자라나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먼 곳을 바라보며
임기응변을 익힐 필요도 없지
그녀는 내게 호감을 내비쳐
봉화를 너무 높게 날리지 말아
봉화를 너무 높게 날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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