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실생활에서 쓰이지도 않는 삼진법을 운운하게 된 탓은 내게 보내는 편지에서 2020년 02월 02일을 두고 재미있는 날짜라고 운을 떼어준 i 덕분이었는데, 그 이후로 삼진법에 속하는 날짜를 즐기며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삼진법의 날이구나.

 비록 마주한 날은 결코 좋지 못한 하루였지만, 내가 마지막 삼진법의 날(2222년 12월 22일)은 커녕 그 다음 삼진법의 날인 2100년 01월 01일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이렇게 일기를 쓰면서라도 오늘의 기분을 쓰다듬어야지.

 

이 날을 기분 좋게 보내고 싶었던 데는 내 개인적인 설레임 외에,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만약 21000101을 기다릴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처럼 삼진법의 날을 기대하며 ‘과거의 누군가가 20221222에 삼진법을 기념하는 글을 써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호기심으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볼 때 ‘검색결과없음’에 괜히 시무룩해지지 않았으면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20200202라는 날짜에 삼진법을 떠올리며 설렌 사람이 나말고도 있는지 검색해봤는데, 없어서 시무룩했거든…

 삼진법의 날 중에서 좋았던 기억은은 앞서 말한 것처럼 i를 통해 20200202라는 숫자가 귀엽다고 느껴진 때이고, 20211202라는 숫자를 마주했을 때는 겨울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Nils Frahm의 Winter 

 

 안녕하세요 21000101을 기다리거나 마주한 미래의 어느 방문자님! 정말로 반갑고, 고맙습니다. 78년 전의 사람인 제가 당신을 정말 기다리고 있었어요.

 2100년 01년 01일의 날씨는 어떤가요? 2022년은 유독 춥고, 눈도 많이 내립니다. 한 주의 시작 쯤에는 날씨가 잠시 풀리는가 싶었더니 오늘부터 날씨가 훅! 포크볼처럼 떨어졌어요. 아래 링크를 올릴테니, 당신의 날씨와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아요. 한편 근래 들어 지구온난화를 실감 중입니다. 미래에는 기온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부디 지금과 그때의 온도 차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찌 되었든간에 이 글을 보신다는 것은 우야동동 무탈하신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오늘은 동지여서 그런지 7시가 될 쯤에야 서서히 해가 뜨더라고요. 긴 밤과 짧은 낮의 시기이다보니 기분이 괜히 더 그믐을 향해가는 한편, 동지에 팥죽을 챙겨먹지 않은 것이 괜스레 걱정되네요. 민망하지만, 저는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을 반농반진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더군다나 요즈음의 나날이 그리 유쾌하지 않아서 그런지, 팥죽을 먹지 않은게 괜히 더 후회가 됩니다. 그래도 뭐,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 날 팥죽을 먹지 않은 것을 핑계삼으며, 내년 동지에는 꼭꼭 챙겨먹으면 되는 일이지요!

 한편 그쪽께서는 소한을 마주할 준비를 하셔야 하는 거 아시지요?!?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의 기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비슷하다면 가장 추운 날이 며칠 뒤면 찾아오지 말이에요. 저는 그 절기를 떠올린 다음, 핫초코를 재주문했어요. 겨울이 되면 퇴근 후 핫초코 마시는 낙으로 사는 편인데, 이번 겨울이 꽤나 추웠던 탓에 12월이 저물기도 전에 사놓은 핫초코를 다 마셔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다시 두 통을 주문했어요.

 이 말을 하고나니 근래 즐거웠던 기억 하나가 또 떠오르네요. 저는 취미삼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는데, 제 영상에 댓글을 달아준 스코티시 친구 덕분에 ‘one’s cup of tea’라는 관용어를 알게되었어요. 이 겨울에 그런 표현으로 제 영상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니 참 기쁘더라구요.

 부디 이 난데 없는 편지가, 그래도 당신의 컵에 즐겁게 담겨 마음에 전해지길 바랄게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여담으로, 오늘의 날씨에 대한 기사와 오늘 발매된 곡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을 남기고 가겠습니다.

 

[날씨] 오늘날씨, ‘동지’인 목요일 출근길 ‘강한 한파’…곳곳에 ‘눈’

[일요신문] 절기상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이자 목요일인 오늘 한파가 다시 시작되겠다.사진= 일요신문DB기상청에 따르면 22일 전국에 구름이 많겠다.경기 남서부, 충청권, 전라권,

ilyo.co.kr

 



옛날에 겪은 일 하나가 불쑥 꿈 속에서 재연되었다. 믿음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어쨋든 '어떤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여겼던 일이 꿈에서 되풀이 되고나니, 괜히 어떤 의미를 띄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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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의 동네에는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 있는데, 나는 그곳을 종종 달리고는 했다. 반환점은 해수욕장이 보일 때까지였고, 그곳에 도착하면 포카리 스웨트로 목을 축인 다음 수타 자장면이나 해장국을 사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달리 둘러볼 것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해수욕장이라고 하긴 했지만 되게 심심한 곳이였고, 일몰의 풍경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밤중이나 새벽녘에 그렇게 달렸으니 그 풍경을 마주할 일은 없었다. 해수욕장까지는 대략 최선을 다해 달려도 편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에야 그 바닷가를 가면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이에 절대 애틋한 마음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지자체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내가 고향을 떠난 뒤로 천지개벽을 하게 되었으니..(사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한 구석이 많다)
어찌되었든, 그시절의 나는 그렇게 심심한 목적지였음에도 그곳을 곧잘 향하고는 했다. 혈기왕성이라기보다는 그저 끈적하기만한 삶이여서, 마냥 달리기라도 해야 좀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심하기로는 도착지 뿐만 아니라 그 경로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과 바다가 일직선으로 뻗어내린 풍경은 중간지점 쯤에 이르면 더이상 고개를 돌릴만큼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되고는 했는데, 그 반대의 풍경은 더더욱 심심했다. 아파트와 공단의 모습이 반반인 그런 곳이였다. (물론 오른편의 풍경은 상경한 이후로는 매번 내게 감탄을 주고 있다)
그런 풍경을 지나는 동안 아찔함을 느끼게 해주는게 있다면, 다름아니라 들개였다. 아마도 그 심심한 구간의 못된 사람들이 내다버렸을 들개들은 썰물 때 돌무리에 걸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물고기 등을 먹으며 살아가고는 했는데, 이따금씩 새벽마다 사람들을 놀래키고는 했다. 나도 종종 들개를 만나고는 했는데, 초등학생 때 반에서 돌려보던 만화책인 'ㅇㅇ에서 살아남기' 같은 책을 통해 습득한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고는 했다. 바닥에서 돌을 줍고서 던지는 시늉을 하면 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껴 달아난다는 그 지혜는 한번도 틀린 경우가 없었다. 그 시늉을 하고나면 들개는 일직선 상의 거리에서 한참을 멀어져서, 그날에는 더이상 볼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보통날이 아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내가 어떤 일 때문에 달리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때가 탈까봐 애지중지했던 흰색 라코스테 트랙탑에 스키니진을 입은 채 달렸던 것으로 봐서, 들개를 쫓아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봐서 말이다. 그날 나는 들개를 마주했을 때, 돌을 던지는 대신 'ㅇㅇ에서 살아남기' 류의 책에서 습득한 또하나의 지식인 시선을 낮춘 다음 가만히 서있기를 택했다. '너를 위협하는게 아니라, 그냥 있을 뿐'이라는 의도를 전하고 싶었다. 주인에게 버려진 이후로 사람에게 악에 받쳤을 그 녀석의 두려움을 덜어내주고 싶은 마음이였다, 는 오지랖보다는 그냥 그녀석과 평화롭게 서로를 지나치고 싶었을 뿐이였다. 서로에게 겁먹거나 위화감을 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나 녀석은 내게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고, 결국 나는 돌을 주어다 던지는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들개는 하마터면 꼬리를 떨어트릴 뻔 했을 정도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나는 들개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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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게 된 경위가 더욱 중요했을 법한데도 그건 전혀 기억나질 않는 반면, 저 소동만큼은 이따금씩 들개를 보면 떠오르고는 했다. 왜인지 모르겠다만 뭔가 헛헛한 기분을 느낀 채. 그런데 불편히 뒤척인 잠자리 속에서 그 기억을 마주하고 나자, 왜 내가 들개와의 그 기억을 종종 떠올리고 그럴 때마다 마른 웃음을 지었는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불아 피어나라 불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

삼키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태우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이런 곳에도 집이 있었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호주머니 속 언 손을 꺼내면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손금이 뒤섞이는 줄도 모르고

해와 달이 애틋하게 서로를 배웅하고
울타리 너머 잡풀이 자라고
떠돌이 개가 제 영혼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불은 꺼진 지 오래이건만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
불은 조금도 꺼지지 않고


너는 잠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는 너의 감긴 눈꺼풀을 열고
눈보라 치는 설원을 바라본다

모든 악몽 위에 세워진
고요의 땅

그곳으로
너를 찾으러 간다

한방울 그리고 한방울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펄럭이는 심장을 들고
너를 찾아 한참을 헤맨다

이토록 추운 잠 속에서
너는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간혹 바람만이 얼굴을 헤집고 돌아갈 뿐
어디에도 너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점점 희박해지는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끌어안으려다
목을 조르며 죽어간 두그루
나무를 떠올리고

먼지로 뒤덮인 피아노 덮개를 열듯
하나하나
용서를 빈다

사내 있는 여자를 집에 들여 한 며칠 살았지 청소도 같이하고 음식도 나누며 번듯하게 사람 하는 짓을 하려고 했지 그 시간들을 인디아라 불렀지 인디아에 가고 싶었으므로 인디아는 영원의 다른 이름이었지

자정 무렵 여자와 나의 이야기는 여자의 사내 이야기가 대부분, 할 말이 있거나 없어도 여자는 계속 사내 이야기만 꺼내고 나는 꾸역꾸역 걸레질을 하며 들었지 슬퍼서 귀가 더 열렸지

멍이 커진다며 앓아누운 몸에게 비누와 삼푸를 사다 주고 양말도 머리맡에 놓아주며 나도 조금 아팠지

여자를 기다리던 사내가 건너편 집으로 이사를 왔어 그가 하는 일이라곤 우리 쪽을 넘겨다 보는 일이 전부였지만 나는 아는 체하지 않았지

가능하다면 혹은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여자는 가지 않고 나는 여자를 보내지 않고 나는 오래 건너편을 살피고 사내는 건너편이자 인디아인 이쪽을 봤으면 그것이 영원이었으면

간극은 안정적이어야 하므로 그 사이엔 인디아로 향하는 철길을 놓아야 했지

끝없이 시차를 견디며 도망하게 될지라도 끝도 없이 영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열정적으로 인디아에 가닿는 일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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