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내 어릴 적 처마 밑에는 아슬아슬한 빛들이 있어
누에의 눈 같기만 했던 빛들이 있어

빛보다 그림자로 더 오래 살아온 것들이 내 눈 속에 붐벼
나는 오늘 밤 그 가난한 가슴들에게로 가는 것인가
저릿저릿한 빛들에게로 가는 것인가

몇 번의 개종 후에 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발목 속에 짐을 풀었어. 창문 너머로 몇 개의 골목들이 생겨났지만 그건 질문도 대답도 아니었어 지리멸렬이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이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죽어가겠지 보고 싶어 아무도 그립지 않았으므로 여름이잖아 당신에게 주지 못한 머리핀 두 개를 반짝이게 하던 세계는 이제 없지만 누가 지나든 넘어진 채 좀 있어도 되는 슬픔에 대해 천천히 이름을 지어보는 일 녹슬고 멍들어서 이제 좀 자유로워지는 일 내겐 없는 기억들이 되돌아와 내 뺨을 후려칠 때 왜 그래요 라고 말하지 않는 일 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려 애쓰는 일 그렇게 반짝이는 일 그렇잖아 여름은 울고 나면 친절해지지 수건이 그랬고 책상이 그랬고 폐허조차 그런 걸 그렇게 좀 죽어도 괜찮다면 어떤 눈물이 반쯤 올라오다 멈추어 선 채 몇 개의 계절을 살더라도 그것은 아주 먼 고장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같은 것 질문과 대답이 그렇게 여러 해를 떠돌고서야 여름을 기다리곤 했지 그래도 여름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잊으면 되고 눈동자도 없이 손가락도 없이 기린이 되는 노래 바람이 불어서 나는 자꾸만 당신에게 계몽되고 있어 바다 너머로 기린을 보러 가고 싶어 더는 자라지 않는 투명해진 발목이라도 괜찮다면 말이야

벽지 속에서 꽃이 지고 있다 여름인데 자꾸만 고개를 떨어트린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런가 하여 허공에 꽃잎을 만들어주었다 나비도 몇 마리 풀어주었다 그런 밤에도 꽃들의 訃音은 계속되었다 옥수숫대는 여전히 푸르고 그 사이로 반짝이며 기차는 잘도 달리는데 나는 그렇게 시들어가는 꽃과 살았다 반쯤만 살아서 눈도 반만 뜨고 반쯤만 죽어서 밥도 반만 먹고 햇볕이 환할수록 그늘도 깊어서 나는 혼자서 꽃잎만 피워댔다 앵두가 다 익었을 텐데 앵두의 마음이 자꾸만 번져갈 텐데 없는 당신이 오길 기다려보는데 당신이 없어서 나는 그늘이 될 수 없고 오늘이 있어서 꼭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도 부음으로 견디는 날도 있는 법 아욱은 저리 푸르고 부음이 활짝 펴서 아름다운 날도 있다 그러면 부음은 따뜻해질까 그렇게 비로소 썩을 수 있을까

나는 같이 맨발이 되고 싶은 것
맨발이 되어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으면
어디든 따뜻한 절벽
여기엔 없는 이름
어제는 없던
구름의 맨살을 만질 수 있지
비로소 나
세상에서의 부재가 되는 일
세상에 없는 나를 만나는 일
이 불편하고 쓸쓸한 증명들로부터
더는 엽서를 받지 않을 거야
이 세상을 모두 배웅해버릴 테니
이건 분명해
견딜 수 없는 세계는 견디지 않아도 된다
창문에 매달린 포스트잇의 흔들림처럼
덧붙이다가 끝난 생에 대하여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그래서 좋은

발을 씻는다
버드나무처럼 길게 발가락을 내어 놓는다
세상의 모든 염려를 품고
울음을 참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오늘 당신과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앞이 캄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 발이 물속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눈이 없는 물고기처럼 당신의 발등에서 조금 자려고 한다

이제 더는 애쓰면서 살지 말아요
어떻게든 사는 건
하지 말아요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었으므로
이제 나는 눈 없는 물고기로 살거나 죽거나
당신 옆에 눕고 싶은 것일 뿐
상처 가득한 지느러미가 환해질 때까지
달빛이나 축내면서

어떤 당부도 희미해진 지금
말간 물이 발목에서 뒤척이는 건
마치 어떤 전생같아서
몽유의 날들을 세어 본다
세어 보는 손가락이 붉어져서
물가의 나무들은 속으로만 발가락을 키운다

'Endless Summer'

 Bruce Brown 감독이 1960년에 촬영한 영화 Endless Summer는 충분한 돈과 시간만 있다면 지구의 공전에 따라 끝없는 여름 속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행에 옮긴 서핑 다큐멘터리로, 두 서퍼가 끝없는 여름을 따라 미국에서 시작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거친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노이즈/글리치 음악가 Fennesz가 2001년에 만든 동명의 음반은 그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햇살처럼 지글거리는 노이즈와 잠잠해진 바다처럼 퍼져나가다가도 이내 거칠게 숨을 쉬는 기타의 텍스쳐, 그리고 여름 바다의 짠내처럼 아릿한 향을 뿜어내는 신스의 소리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향수는, 서퍼들이 거친 파도와 뒹굴고 난 뒤 어느새 벌겋게 채워져가는 바닷가를 바라보는 그 풍경 속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Before I Leave

 그런데 이 음반에는 유일하게 이질적인 곡이 있습니다. 음반이 2/3지점을 지났을 때 나오는 ‘Before I Leave’으로, 마치 슬라이드 필름 환등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띈 글리치 음악입니다.

페네스가 어떤 의도에서 이질적인 곡을 만들었을지를 생각하면서, 저는 다큐멘터리 속의 사람들이 뜨거운 파도를 쫓아 지구를 한바퀴 돌고서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여름을 실제로 경험했을 때의 희열은 어떠했을까요? 비록 지구의 공전현상이 놀라울 것 없는 때였고 비행기로 이동을 하긴 했다만, 일년 내내 여름을 쫓아 떠도는 것은 여전히 벅차고도 경이로운 일일테지요. 그 런 시도를 실행해내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은 거친 파도로 밀려왔을 겁니다

 그러나 푸른 파도를 바라보는 여정의 마지막 밤 속에서, 다시 영원하지 않은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 속에 밀려온 파도는 잠재워졌을 것일테지요. 그런 이유에서 ‘Before I Leave’를 들으면 제게 순간들이 쉼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들리고,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슬픔의 정서가 있어 이 음반이 더욱 아름답고 완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 속에 담기지 않은 이면의 감정과 서사를 빚어내어, 영원이라는 관념을 달리 생각케 만들기에요. 

 

Endless

 음반은 ‘Endless’로 끝맺습니다. 그들은 단 한번 머금어본뒤 ‘Endless Summer’를 떠났지만, 그 기억은 주홍빛 노을아래 뜨거운 파도가 되어 그들의 삶에서 끝없는 여름이 되었을 겁니다.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박소란, 푸른밤)

 

 

영화 Endless Summer. 여담이다만 이 영화는 ‘surf-and-travel’이라는 서핑문화를 만들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핑 영화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으며, 재작년에는 'A Life of Endless Summer’라는 제목의 헌정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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