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Gavin Hills와 Zed Nelsen의 사진. (출처 : 'Gavin Hills, Bliss To Be Alive' 페이스북 페이지)

 
  이런 책을 쓸때는, 일반적으로 글쓴이가 고마운 이들의 목록을 나열하기 마련이지요. 허나 개빈이 그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제가 최선을 다하여 그를 대신해 해보겠습니다. 이 책의 일정 부분은 제가 The Face 지의 편집자로 있을 때 쓰여진 것이지만, 단순히 제 역할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Richard Benson과 Ekow Eshun, 그리고 무엇보다 Charles Gant의 꾸준한 관심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The Idler의 Tom Hodgkinson은 그에게 정규 칼럼을 쓰도록 해주었던 좋은 편집자 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각별한 친구였습니다.
  James Freedman은 그에게 Zone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The EnglandManchester United magazines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에게 사랑을, 그리고 지지와 함께 많은 웃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Cynthia Rose는 자신이 City Limits의 편집을 맡고 있는 동안 개빈이 주류 매체에 첫발을 떼도록 제안해주었으며, 다른 것을 떠나서 제게 개빈을 소개해준 믿음직한 사람이었습니다.
  Tim Leighton-Boyce는 RaD에서 그의 재능을 격려해주었으며, 그들이 Phat!을 런칭했을 때 그의 재능에 큰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개빈의 절친한 친구이자 정규 사진작가였던 Zed Nelson은 그와 함께 세계를 여행했으며, 앙골라의 호텔 방에서는 둘다 병에 걸려 진땀을 흘리면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의 ‘아디스에서 고주망태가 되어버리다’ 편에 자세히 나와있는, 개빈의 에티오피아에서 마지막 식사를 위한 금액인 100달러를 건네준 적도 있었지요.
  Paul Lowe는 그가 사라예보에 여러번 그나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Steve Blame은 자신이 들어갈 수만 있었더라면 영상 촬영을 지원하려 했습니다.
  Heather Hodson과 Cathy Wilson 또한 각별한 감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제 생각에는 개빈이 Fraser Hills와 Miranda Sawyer, 그리고 Becky Carroll에게도 고마움과 사랑을 전했을 겁니다. 그리고 Hodder에서 그의 편집자였던 Simon Prosser에게도도 말이고요. 그는 Penguin 출판사에 이 묶음집을 정식 출판하게끔 계획해 주었답니다.
  이번 묶음집을 엮어내는 동안, 제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드려요. 개빈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친구였다보니, 제가 부득이 하게 언급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안다면, 개빈이 당신을 어떻게 느꼈을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때에 사람들로 꽉찬 댄스플로어에서, 분명 개빈이 당신의 귀에 대고 아주 요란한 함성을 낸 적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개빈의 가족과 1997년에 Zone에서 그와 함께 근무한 직장동료들 덕분에, 저는 이 책을 펴내는 동안 그의 집과 회사의 컴퓨터에 있는 하드디스크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명확한 이름표가 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우리가 함께 작업한 주제의 초안,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작업에 대한 청구서, 농담거리들, 새로운 잡지에 대한 기획서, 새로운 TV 시리즈, 대출 목록과 상황해야하는 금액의 목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생 동안의 잡동사니들이 드러나 있었고, 끝맺지 못한 채 남아있었지요.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죽음에는 사생활도, 일과를 정리할 기회도 없고, 깔끔한 마무리도 없습니다. 그가 쓴 모든 것이 그 디스크들에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제가 찾지 못한 바람에 이 묶음집에 넣지못한 좋은 글도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느 출판물을 위해 쓰여진 것인지, 게재된 적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제가 수록해버린 작품이 몇개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정식 게재된 적 있는 글이라면, 해당 잡지의 관계자들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은 점에 사과를 드립니다.
  이 책에 수록된 몇개의 글 중에는 그가 쓴 것 중에서 베스트가 아닌 글도 있지만, 그것들은 개빈이 떠나기 전까지 10년 동안의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기에,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그가 파티나 사건에 대해 너무나도 터무니 없거나 믿기 힘든 글을 쓰고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기록될 필요가 있어보여서 수록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P.J Harvey와 Keith Allen와의 인터뷰, 그리고 The Observer에서의 작업물 대부분을 포함한 다른 좋은 글 일부는 이 책의 테마와 무관한 듯하여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디스크들을 살펴보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전해준 잡지와 갈무리된 조각들을 훑어보면서, 저는 개빈이 자랑스러워하고 또 책으로 엮어지길 원했을 것이라 느꼈을 작품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허나 전적으로 이것은 젊은 작가의 작업물이며,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찾고 있으며, 그가 믿고 싶었던 것과 말하고 싶어했던 것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최고의 작품을 출간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더 좋은 것들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Sheryl Garratt, 2000년 1월에

 

 

 

살아있다는 축복

                 

 

 

 

 

 

 

 

 

 

 

개빈 힐스

 

 

 

 

 

 

 

 

 

 

 

셰릴 가렛 편집

 

 

 

 

 


 

 

 

 

 

초판의 서평

 

 

 

 

 

  Gavin에 대해서는 그애 대한 일화를 전해 듣든 직접 만나든,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그는 영감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저널리스트 였지요.

 

 

-James Brown

 

 

 

 

  "강인하고 아름다웠으며, 약간의 똘끼와 살짝 탈모가 있던, 강인함과 용기는 사자 혹은 진실된 운동가 같던 사람. 제가 이렇게 쓴다 한들 Gavin에 대한 글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충분히 유쾌하지도, 충분히 격정적이지도 부드럽니도 않을 뿐더러, 제가 원하는 바 대로 되지도 않지요. 그럴려면 그를 다시 살려 내어야 할 겁니다.

  The Face와 The Observer, Manchester United magazine, 그리고 The Idler 등 가지각색의 출판물 속에서, 그는 패션과 축구, 엑스터시와 황홀경(원문에 Ecstasy and ecstasy라고 쓰여 있음), 애국심과 정치 문제, 그리고 소년들이 지닌 것과 어른들의 감정에 대해, 나이트클럽과 나이트클럽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는 앰네스티 인터네셔널 시상식에서 앙골라에 대한 기고문으로 상을 받았으며, The Face로부터 청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제게 고지식함을 버리고서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Miranda Sawyer

 

 

 

 

 

 

 

-

 

 

 

 

 

 

 

작가의 부모님, Helen과 John에게.

그리고 그의 형제인 Fraser와 누이 Rona에게.

 

 

-

 

 

그리고 Gavin을 그리워 하는 모든 이들에게

- 그를 만나본 적이 있든 없든 간에.

 

 

 

 

 

 

 지난 3년 간, 저는 봄과 가을에 작곡을 하고선 음반을 발매했지요. 올해는 그 사이클을 깨고서, 이 땅에 제 작품 하나를 3년 동안 묻었어요.

 

 저는 올해 탄생 100주년(*2021년)을 맞이한 오크니 제도의 시인 George Mackay Brown를 기리기 위해, 바이올린 솔로와 스트링 앙상블을 작업했습니다. 레코딩은 1/4 인치 테이프로 마쳤답니다.

 

 디지털 파일은 영구제거를 했어요.

저는 앨범의 유일한 사본을 들고서 런던에서 오크니 제도로 차를 몰고 갔답니다.

 

 올해는 이 음악을 발표하는 대신, 일종의 지도를 꺼내려 해요. 그 지도를 사용한다면, 당신은 직접 작업물을 향한 여정을 떠나서는, 그걸 찾아내고 꺼낼 수 있을 것이랍니다. 제가 유일하게 요청할 것이 있다면, 만약 당신께서 이 작업물을 찾아낼 경우 우리가 함께 그 음악을 틀고 들을 수 있는 장소로 가져와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이 파헤쳐진 테이프를 공개하고서는 우리의 디지털 월드에서 다시 나눌 수 있을테지요. 

 

 저는 몇몇 위대한 음악가와 함께 그 음악을 라이브로 다시금 재구성 할 것인데, 묻어두었던 작업물과 똑 들어맞는 라이브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랍니다.

 

 어떤 아이디어들이 형태를 갖출 때면, 대개 그것이 전개되어 갈수록 서둘러 공유하고 싶은 열망이 생긴답니다. 허나 새를 지켜보듯이, 저는 이 작업물을 날려 보낸 다음 이 녀석이 마땅한 때와 장소에서 안착하게 하고싶네요. 

 

 이것은 한 조각의 기념물이자, 한 조각의 축하입니다. 

2021. 6. 23

 

Each year for 3 years I’ve written and released an album every spring and autumn. This year, to break that cycle, I’ve planted one in the earth for 3 years.

 

I’ve written a work for solo violin and string ensemble, celebrating Orcadian poet George Mackay Brown, who would have been 100 this year. A recording has been mastered onto 1⁄4 inch tape.

 

The digital file has been permanently deleted.
I’ve driven the only copy of the album from London to the Orkney islands.

 

This year, instead of music, I will release a map of sorts. With this, you are welcome to travel, search and attempt to find the recording and dig it up yourself. I only ask that if you do find it, please bring it back to me where we will play and listen together. At that point I will release the unearthed tape and share it back into our digital world.

 

Along with some great musicians I will try to re-perform it live, exactly as it sounds from the earth.

When an idea forms there is often an urge to share it as quickly as it develops but like spotting a bird, I want to let this fly and land in its own place and time.

 

It’s one part remembrance, one part celebration.

2021. 6. 23

 

 

Home - Content with Silence

Each year for 3 years I’ve written and released an album every spring and autumn. This year, to break that cycle, I’ve planted one in the earth for 3 years. I’ve written a work for solo violin and string ensemble, celebrating Orcadian poet George Mac

www.contentwithsilence.com

 

  저는 방금 제 친구인 Gavin Hills(이하 개빈 힐즈)의 기고문 묶음을 편집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며 표지를 보니, 그는 저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짓고 있네요. 그 사진은 1994년 엘살바도르 선거 때 Zed Nelson이 개빈을 찍은 것으로, 아름다운 청년은 펜을 물고 있으며, 그의 앞에 놓인 메모지는 친숙하게도 휘갈겨진 글씨로 덮여 있습니다. 여담이다만 그 메모는 그 당시 제가 에디터로 있던 매거진인 The Face(역주 : 영국의 전반적인 문화를 비롯해 사회문제까지 다루는 잡지)에 그가 쓰고있던 특집 기사의 메모였답니다.
 
  이것은 좋은 표지이지만, 저는 그것을 보고 있으면 둔탁하고도 아린 통증 만이 느껴집니다. 저는 이 책을 작업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오래동안 이 일을 외면했어요. 지난 2주 동안 이 기사를 불필요하게 끄적이고 또 다시 고쳐대는데 시간을 보낸 것 처럼 말이지요. 왜냐하면 이 작업을 끝냈을 때면, 더이상 정리할 말이 없어졌을 때면, 남은 것이라고는 개빈이 죽었다는 사실 밖에 없으니까요.
 
  그의 31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인 1997년 5월 20일, 그는 몇몇 친구들과 Cornish 해안에서 낚시를 하던 중 바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바다는 깊었고 물살은 강했으며, 그리고 개빈은 수영을 할 줄 몰랐지요. 그는 물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Casual 스타일의 소년들 (출처 : 80'S CASUAL CLASSICS. 이하 이미지 클릭 시 링크 이동)

 

  개빈은 Surrey의 Leatherhead 인근에 자리한 작은 마을인 Headley에서 자랐습니다. 10대 초반 무렵 그는 그의 형인 Fraser와 함께 축구 경기를 보러가기 시작했어요. 또한 Casual이라 알려진, 거대하고도 기록된 것이 거의 없는 80년대의 유스컬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옷을 차려입고선, 축구 경기에서 떼지어 다니고, 달리기를 해대거나, 약간은 쌈박질을 하기도 하는 문화 말이지요.
 
  이후 그는 (디자인은 끔찍했다만) 패션을 공부했으며,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긴 다음에는 (스케이트 실력 또한 최악이었지만) 스케이트보드 씬에 속했으며, (아주 훌륭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는 스케이트 매거진인 RaD에서 일하며 스케이트보딩에 대한 두권의 책을 써내기도 했는데, 1991년부터는 The Face에서 짧고도 재미있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빈 힐스가 쓴 기사의 삽입이미지 (출처 : One Up Manship Journal)

 

  그 해 말, 우리는 개빈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축구 훌리건들의 흥망성쇄를 다룬 긴 연재기사를 실었습니다. 잡지가 가판대에 채워진 지 얼마 안되었을 때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하더니, 몇 달 동안이나 계속해서 편지가 오더군요. 독자들은 자신들의 축구 이야기와 Terrace 패션(역주: 축구 관중으로부터 비롯된 패션문화. 그 당시 영국의 경기장은 입석(Terrace)으로 경기를 관람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음)에 대해 논하는 것에 아주 열띈 이야기를 전해왔는데,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들 모두 개빈을 아주 친밀한 친구처럼 여기며 이야기를 꺼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The Face의 스타 작가 중 한명이 되었으며,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 문화를 주제 삼아 일반적이지 않은 위트와 독창성을 띈 글을 썼습니다. 약물, 클럽, 트레이닝복, 섹스, 스포츠, 컴퓨터 게임 등을 말이지요.
  1992년의 끝무렵에는 포토그래퍼인 Zed Nelson과 함께 소말리아로 간 다음, 다를 바 없는 문체로 그곳의 기근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후에는 분쟁지역에 대한 기사, 특히나 보스니아에 대한 글은 잡지에서 정기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기사에서 신문의 헤드라인과 TV뉴스에서는 당연스러운 듯 배제되는 그늘진 영역을 다루는데 뛰어났습니다. 기근 지역의 레스토랑이나 전쟁 중에도 성업 중인 나이트 클럽, 병적인 갈등으로부터 나오는 병적인 농담, 그리고 도움이 되는 만큼 해가 되기도 하는 원조 등에 대해 말이지요.

 

국제 앰네스티의 언론상을 수상하는 개빈 힐스 (출처 : The Face)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뉴스의 이면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조명하는데 뛰어났으며, 정치적인 것을 사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습니다. 가령 Celo 같은 사람들(역주 : 마땅한 Slang을 찾지 못했기에 원문으로 남겨놓음), 핏불을 데리고 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이, 수상한 나이트클럽, 그리고 한동안 사라예보에서 전쟁영웅이었던 이의 마리화나 취향 등 말입니다. 그리고 소말리아의 굶주린 어머니는 TV 카메라가 자신의 고통을 모든 앵글에 담을 수 있도록 자신의 아들을 두번이나 매장하길 요청했다는 이야기나 앙골라의 젊은 총잡이들이 BBC 라디오에서 나오는 'Rhythm is a Dancer(역주 : SNAP! - Rhythm Is A Dancer)'의 사운드에 맞춰 body-popping 댄스를 춰댄 이야기를 말이지요. 그리고 엘살바도르의 무료한 갱들이 LA 갱의 차량 총격전을 흉내 낸 듯 했지만, 차를 살 여유가 없던 탓인지 버스를 타고서 서로를 죽여대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1993년 여름, 그는 한 소년지인 Phat!을 창간 합니다. 아직 영국의 출판계에서는 마땅치 않다고 여겼던, 젊은 남성을 대상을 목표로요. '훌리건을 위한, 훌리건에 의한'이라는 모토는, 그 불량한 유머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Telegraph에서는 '당신의 십대 아이가 이 잡지를 읽었으면 좋겠습니까?'라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잡지는 세 차례 발간 이후 끝나버렸지만, 이후 'Loaded'의 성공을 통해 

Gavin은 일종의 증명을 해냈습니다.

 

  그는 the official England(역주 :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을 다룬 잡지)와 Manchester United football magazines에서 에디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Radio 4(역주: BBC의 라디오 방송 중 하나로, 해당 채널은 시사,교양을 주로 다룸)에서도 일했으며, The ObserverThe Guardian을 비롯한 매이져 신문사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잡지에 기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The Idler(역주 : 한가로움(Idling)을 통해 삶의 예술적 탐구를 지향하는 영국의 격월지)에서는 정기적인 칼럼을 썼는데, 이 칼럼에서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무너져버린 이후 찾아온 우울에 대해 진솔하게 써나갔습니다. 또한 그는 대박을 거둔 명작 소설인 Disco Biscuits(역주 : 영국의 레이브 문화를 주제로 다룬 단편 소설집)에 짧은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모든 이야기를 책에 담는 것이 어려웠지만, 끝자락에서 보았을 때 이 책에는 제가 예상 못한 일관성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개빈은 80년 대 말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기에, 그의 글은 새천년을, 그러니까 전에 없던 변화의 시기이자 불확실하면서도 기회를 지닌 시기를 코앞에 두고서 성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파업과 시위가 더이상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게 된 시대를 자라온 세대였습니다. Live Aid(역주 : 1985년에 개최된 대규모 자선 록페스티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마지막 장면을 차지하는 공연)를 비롯한 여러 자선공연 이후, 모든 오래된 신념과 '이즘(-ism)'이 저물기 시작한 이후 였지요. 한편으로는 마약이 또다른 여가 중 하나였고, 값싼 비행기 티켓과 인터넷이 이전 세대에서는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세계를 압축시켜버린 세대였고요.

 

  그의 작품은 축구 문화의 형태가 변화되어 가는 것과 클럽 문화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무리와 패션의 결합, 소비지상주의의 급격한 치솟음, 그리고 테크놀러지에 대한 우려, 다시 말해 넘쳐나는 정보량과 유례없이 가속화되어가는 변화의 속도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영국인이 되는 것, 남성이 되는 것, 그리고 좌파 혹은 진보적이게 되는 것에 대해 깊은 의문을 띄고 있던 때에, 그것을 고찰하고 재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는 이런 이야기를 말할 때에도 좋은 농담을 가득 채웠습니다.

 

  따듯하고, 개방적이고도 즐거운, 그리고 똘끼있는 꿍꿍이들과 훌륭한 아이디어로 가득 했으며,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섬세하고도 여렸던 사람. 개빈은 종종 자신의 시대가 지닌 모순에 인격을 부여한듯 했습니다. 그는 여성을 사랑할 줄 아는 젊은이였으며, 인종차별을 질색하는 애국자였고, 언제나 끊임없이 계획을 지녔던 농땡이꾼이었으며, 그러한 것들이 정치적인 행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치 않았던 향락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발전 중인 작가였고, 그가 우리의 곁을 떠나기 전 쯤에는 자신의 첫 소설에 대한 계약서에 잉크를 새겼던 참이었습니다.

 

Miranda Sawyer가 올린 개빈 힐스의 사진 (출처 : Miranda Sawyer의 트위터)

  또한 그는 Miranda Sawyer와 함께 BBCRough Guide 여행 시리즈에 출연하는 것으로 방송계에도 진출 예정이었습니다. 그들은 파일럿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레바논을 여행했었고, 그 여름 글래스턴버리 페스티벌에서 입을 로브를 구매했었지요. 그러나 그것을 입기 전에 개빈은 죽어버렸고, Sawyer는 그 없이 시리즈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이렇게 말해요. '나는 매일, 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돼. 그리고 그 사실이 기뻐. 그는 내게 무척이나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그의 부고를 읽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너는 그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구나. 이것은 불공평해"라는 잠기게 돼. 그는 너무 젊은 나이에 떠나가버렸어. 정말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원문 출처 : The Guardian

 

The twenty-first century boy who never saw the millennium

I've just edited a book, a collection of journalism by my friend Gavin Hills. I'm looking at the cover as I write this, and he is grinning back at me: Gavin photographed by Zed Nelson during the 1994 elections in El Salvador, a good-looking lad chewing on

www.theguardian.com

 
 

 

White flowers on the lamppost

What bliss to be alive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

살아있다는 것이 어찌나 행복한지

 

Yeah, we've got war stories

But who’ll hear them

Tonight you're killing the vibe and when we're old

No one will go near them

Or near us

But medals rust

So keep on with the fight and stop making a fuss

그래, 우리에게는 투쟁의 이야깃거리가 있지

허나 누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될까

오늘밤 너는 흥을 깨고 있고, 우리가 늙고나면

그곳 근처로는 아무도 가지 않게 될거야

혹은 우리의 곁을

반면 메달은 녹슬어 버리지

그러니 계속 싸워나가, 야단 떨지는 말고

 

To closing bells I feel compelled

No man left on the shelves in the war against ourselves

마감종이 울리는 것에 압박감을 느껴

우리 스스로와의 전쟁에서 단상 위에 남아있는 이 누구도 없네

 

’Cause we're flowers on the lamppost

White flowers on the lamppost

Bliss to be alive

What bliss to be alive

'Cause we're flowers on the lamppost

White flowers on the lamppost

Bliss to be alive

What bliss to be alive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니까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지

살아있다는 축복

살아있다는 축복이란 뭐야?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니까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지

살아있다는 축복

살아있다는 축복이란 뭐야?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I was dreaming of you...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네 꿈을 꾸고 있었어…

 

She's kissed any number of men through me

Through red, sore lips and gritted teeth

You were always underneath

But I've never loved enough to care, I swear

I swear

I've never loved enough to care

Always that one friend who pays for the others

A martyr to the night

While you're deep undercover

But I’ve never loved enough to care, I swear

I swear

I’ve never loved enough to care

그녀는 나를 통해 수많은 남자들에게 키스했지

붉고 부르튼 입술과 다문 이빨을 거치면

항상 네가 마음 속에 있었지

허나 나는 결코 충분히 관심 갖고 사랑한 적이란 없었지, 맹세코

맹세코

나는 결코 충분히 관심 갖고 사랑한 적이란 없었지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해 값을 치뤄온 어느 친구는

밤의 순교자야

네가 깊은 비밀 속에 있는 동안

허나 나는 결코 충분히 관심 갖고 사랑한 적이란 없었지, 맹세코

맹세코

나는 결코 충분히 관심 갖고 사랑한 적이란 없었지

 

Got any more of those Gavin Hills

There are no more Gavin Hills

Got any more of those Gavin Hills

There are no more Gavin Hills

'Cause we’re flowers on the lamppost

White flowers on the lamppost

Bliss to be alive

What bliss to be alive

Gavin Hills

I was dreaming of you...

Gavin Hills 같은 이들은 여럿 있지만

Gavin Hills는 더이상 없지

Gavin Hills 같은 이들은 더 있지만

Gavin Hills는 더이상 없어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니까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지

살아있다는 축복

살아있다는 축복이란 뭐야?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니까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이지

살아있다는 축복

살아있다는 축복이란 뭐야?

Gavin Hills

나는 네 꿈을 꾸었어

 

Do me right and I'll make sure that heaven holds you

We're bound for life and I was always dreaming of you

We're flowers in the rain

White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나를 마땅하게 해줘, 그러면 천국이 너를 지켜주게끔 해줄게

우리는 생애 내내 함께하고 나는 언제나 너를 꿈꾸고 있었지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꽃이지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

빛속의 꽃들

Do me right and I’ll make sure that heaven holds you

We're bound for life and I was always dreaming of you

We're flowers in the rain

White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나를 마땅하게 해줘, 그러면 천국이 너를 지켜주게끔 해줄게

우리는 생애 내내 함께하고 나는 언제나 너를 꿈꾸고 있었지

우리는 가로등에 놓인 꽃이지

가로등에 놓인 하얀 꽃

빛속의 꽃들

 

I was dreaming of you...

네 꿈을 꾸고 있었어…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Flowers in the rain

I was dreaming of you...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빛속의 꽃들

꿈을 꾸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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